도올의 로마서 강해, 김용옥, 스피노자, 신즉자연론, 헤노테이즘, 모노래트리, 범신론, 능산적자연, 유일신관, 강해, 구약시대, 바빌론유수, 페르시아문명, 사도행전, 대속, 십자가

4 years ago

서문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나의 붓길이 이 책의 원고칸을 한칸 한칸 메꾸어나가고 있는 절박한 시간 동안 나는 탄핵정국이라고 하는 스트레스에 내내 시달렸다. 3월 5일 밤 드디어 이 책의 원고를 탈고했다. 그리고 연이어 부지런히 교정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닷새 후에 헌재의 판결을 접했다.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헌재 소장권한대행 이정미 재판관의 낭랑한 목소리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사운드 심볼을 내 귓전에 때릴 때 나는 실로 거대한 충격, 아니, 뭐라 할까, 해월 선생이 그리워하던 “다시 개벽”의 갈라짐이라 할까, 나의 존재의 그룬트가 뒤바뀌고 시간의 움직임이 새로운 카이로스를 향해 컨버젼을 일으키는 그런 혁명의 빛줄기가 나의 전신을 전율케 하는 것을 느꼈다.

그 찰나의 직전까지만 해도 무소불위의 권력인 듯이 느껴졌던 거대한 중압체가 그 순간에 쓰레기통의 휴지만도 못한 전혀 무의미한 물체로 그 실체성을 상실해버리는 것이다. 멍하게 앉아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제자 오군으로부터였다.

“선생님! 이제 우리도 우리 역사에 대한 진정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미국혁명이나 프랑스대혁명보다도 더 위대한 혁명을 우리 민족이 인류사에 남겼잖아요. 브렉시트로부터 트럼프의 승리까지 전 세계가 정의롭지 못한 이기주의로 빠져 들어가고 있을 때 우리 민족만이 정의로운 선택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잘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 겨우 우리 역사의 희망이 보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계속 버팀목이 되어주셔야지요.”

미국혁명은 그것이 근원적으로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혁명이 아니라, 영국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독립전쟁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연방파든 비연방파든 “자유”라는 가치에 매달려 있었을 뿐, “평등”이라는 인간세의 가치에 대하여 심오한 고민을 결했다. 오늘날까지도 미국인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앞에 “자유”라는 수식어만을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사회”라는 말은 놓아서는 아니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링컨이 게티스버그연설에서 말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이라는 것은 실제로 사회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는 실제로 아무런 규정성이 없는 추상적 신화용어가 되어버렸고, “의, 에 의한, 을 위한”이라는 것은 듣기 좋은 레토릭이 되고 말았다. 진실로 “의, 에 의한, 을 위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민과 민주는 끊임없이 역동적인 교섭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주의는 실제로 “자유로운 기업체제”를 위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미국의 민주는 돈이 우선이다. 인간의 평등성에 관한 근본적 인식이 부족한 것이다.

그런데 비하여 제3신분의 제헌국민의회의 인권선언을 기축으로 긴 시간에 걸쳐 치열하게 진행된 프랑스혁명은 혁명과정 자체 내에 많은 인류정치사의 다양한 패턴들이 집결되는 복잡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자유라는 가치를 상실하지 않고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이상을 인간사에 제시했다는 의미에서 가볍게 처리될 수는 없다.

민주는 자유와 평등을 융합하는 곳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나의 바울연구는 바울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라는 가치와 평등이라는 가치의 융합을 시도한 최초의 혁명적 사상가라는 의미의 지평을 갖고 있다.

나는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나라 민중들과 수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반드시 탄핵은 인용될 것이며, 인용된 후에 새로운 정권의 주체가 될 사람들은 반드시 다음의 세 가지 주제를 실천해야 한다고 외쳤다.

1. 남북화해
2. 경제민주화
3. 풍요로운 농촌

이러한 주제는 내가 여기 상설치 않는다. 지금 이 역사의 길목에서 내가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당위성은 사드는 결코 이 땅에 배치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런 효용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조국을 또 하나의 대전쟁의 전선으로 만드는 거대음모의 일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 현명한 다른 선택의 길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 우리 민족에게는 후천개벽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에 의한 인의”의 새세상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가능성에 대하여 보다 깊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세계역사를 포섭하는 넓은 도량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가 과연 우리 역사의 지평 위에서 무슨 의미를 갖는지 기성종단의 편협한 울타리를 뛰어넘어 우리 민족 전체가 한번 체험해봐야 할 시점이다.

2017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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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도올, 바울과의 50년 사상투쟁!
이 책은 신약성서 중의 사도 바울의 편지인 로마서를 도올 김용옥선생이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과 20세기를 통하여 놀라운 진전을 이룬 서양의 신학, 고고학 등 모든 연구 성과를 망라하여, 치열하게 해설합니다. 그리고 바울이라는 세계사적 인물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바울의 사상적 실천적 위대성을 숙연하게 드러내줍니다. 독실한 기독교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중국고전학을 심도 있게 연구해온 도올이 감행한 이번 성서주석은 세기적 사건입니다. 성서가 드디어 동방적 사유의 지평에서 분석되고,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어린 청년기에 고향의 고교생들에게 영어 성경을 가르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 바이블클래스에서 비로소 바울을 대면하여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까 이 노작(勞作)은 도올이 약관의 나이에 로마서를 통하여 처음 바울과의 만남이후 오늘까지 이어진 그와의 50년 된 사상투쟁의 결실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를 이해시키기 위한 것!
이 책은 크게 두 부분, 입오(入悟)와 강해(講解)로 나뉩니다. 입오 부분은 바울이라는 인물이 탄생되는 배경을 총체적으로 기술합니다. 강해는 로마서원문에 즉한 주석입니다. 서문으로서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입오는 탐구욕에 불타는 저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풍성한 사유의 숲을 여행합니다. 여기에서 구약시대부터 초기 기독교가 뿌리내리는 시기까지의 모든 서양문명사가 종합됩니다. 바울이라는 인간을 조명하기 위하여 바울과 대비되는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언급하고, 과연 예수는 유대인인가의 의문을 풀다가, 유대의 역사로 접어들고, 유대역사의 원점으로 본 바빌론유수를 세밀하게 탐색합니다. 바빌론유수를 통하여 유대인들은 그들의 역사를 새롭게 구성합니다. 그 구약의 성립사를 논하고, 그 과정에서 고레스로부터 시작된 페르시아문명을 검토합니다. 그리고 페르시아문명을 패퇴시키고 새롭게 등장한 그리스문명의 패권시대를 설파합니다. 그래서 결국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전통과 사유구조가 어떻게 바울의 몸속에서 융합이 되고 재창조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바울!
바울은 기독교를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의 모습 이대로 만든 결정적인 인물입니다. 신약성서는 예수에 대한 기록인 복음서와 바울의 편지들로 대별됩니다. 신약 27서 중에서 13서가 바울이 직접 쓴 편지이고,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도 바울이 중심입니다. 즉 바울과 관계된 문헌이 과반수가 넘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죽음을 전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대속(代贖)으로 해석하고,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예수 팔로워들의 믿음인 부활을 인류 희망의 사건으로 받아들여, 예수를 구세주 그리스도로 선포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로마서를 통해 본 바울의 사상!
저자에 의하면 바울은 파워풀한 사상가와 치열한 실천가의 면모를 두루 갖춘 인물입니다. 바울은 차별이 없는 보편주의적 인간관을 견지합니다. 그는 인류문명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았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굴레에서 육신을 부여잡고 허덕이는 당시의 율법주의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믿음으로써 자신의 죄도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롭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은총의 구원을 선포합니다. 행위에 의한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얻는다는 선언은 가히 돈오(頓悟)적 전환입니다. 바울이 신앙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책은 우리 현대사의 뜨거운 현장 속에서 탄생!
현재 파면되어 사법처리 단계에 이른 박근혜게이트가 국민들에게 알려진 초반부에 도올은 “이 사건은 박근혜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저히 대통령에 되어서는 안 되고, 될 수도 없었던 박근혜를 악착같이 대통령으로 만들어버린 우리 역사 전체의 죄를 십자가에 걸고, 국민 모두가 새로 태어나야한다”라는 메시지를 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메시지의 핵심은 바울의 사상에서 왔습니다. 저자 도올은 그 메시지의 원전적 의미를 보다 명확히 정리하기위해 바울의 로마서를 제대로 정독하고, 포괄적이고 명료한 해설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박근혜게이트로 집필이 착수되었고, 헌재에 의한 대통령 탄핵 확정 때쯤 완성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우리국민은 촛불의 함성으로 수준 높은 민주의 세계사적 혁명을 이루어냈고, 도올은 서양 기독교 탄생시기의 역사, 종교, 사상을 아우르는 지성사의 기념비적 성과물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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