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의 배신, 리어 키스, 현재 인간 만든건 육식, 필수 아미노산은 있는데 왜 필수탄수화물은 없을까, 농업, 숲, 습지, 목초지, 비, 흙, 공기, 파종, 수확, 가공, 존로빈스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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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채식을 고집해 온 할리우드 스타 앤절리나 졸리는 최근에 고기를 다시 먹고 있다고 밝혔다. 비행기를 탈 때도 따로 도시락을 챙길 만큼 채식을 철저히 지켜 온 그가 육식을 재개한 이유는 6명의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 체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채식주의 식단으로 “영양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또 동물 권익 보호를 주장하며 고기를 먹지 않고 모피도 입지 않던 배우 내털리 포트먼도 임신 8개월 차에 접어들자 2세를 위한다며 채식을 포기했다.

바야흐로 ‘배신’의 시대다. 그러나 건강의 대명사 ‘채식’만큼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기를, ‘알려지지 않은 채식의 진실’ 같은 것은 없기를 모두가 원했을 것이다. 채식의 배신은 곧 우리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걸려 있는 문제다. 그런데 이 책 『채식의 배신』은 그러한 우리의 바람을 배신한다. “육류 섭취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심혈관 질환으로 이어진다.”라든지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육식은 피해야 한다.”와 같이 채식주의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믿거나 공감하며 채식을 실천해 온 사람들은 이 책에서 말하는 채식주의의 불편한 진실이 놀라움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행동의 전면적인 변화를 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리어 키스(Lierre Keith)야말로 채식의 배신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키스는 20년간 동물성 식품을 입에 전혀 대지 않는 극단적인 비건(vegan) 생활을 실천하다 다시 잡식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종교처럼 신봉했던 채식주의가 실은 자기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든 주범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키스는 채식주의의 주요 주장, 사람들이 ‘채식’ 하면 으레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믿음의 근거와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채식주의의 주요 주장이 무지와 오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밝히고, 도덕적, 정치적, 영양학적 면에서 그 주장들을 논박하는 책이다.

키스는 “완벽한 대차대조표”를 원했다. 채식주의에서 주장하는 논리와 그 근거를 조목조목 살피면서 실제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따졌다. 채식이 우리 일상과 지구 환경, 인류의 미래에 과연 플러스인가 마이너스인가? 키스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채식주의의 의도는 좋으나 그 해결책이 잘못됐으며, 채식이 오히려 인간과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라는 것. 키스는 인체 영양이나 사회 정의,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채식주의의 강한 열망에 동감하지만 채식주의가 ‘무지’와 ‘맹신’으로 인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책의 원제는 ‘채식주의의 신화(The Vegetarian Myth)’다. ‘myth’는 한국어 문헌에서 편의상 ‘신화’로 번역되고 있지만, 이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국어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은 뜻을 한 가지 더 풀이하고 있다. 바로 “많은 사람이 믿고 있지만 근거가 없거나 잘못된 생각”이다. 즉 이 책은 채식주의의 주요 신화,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채식주의의 주장들이 실은 근거가 없거나 현실을 오도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키스는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 이유에 따라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로 나누고 다음과 같은 논의를 전개한다.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는 이런 점을 놓치고 있다

인간은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수백만 종류의 생물에 의존하고 있다. 인간이 하지 못하는 생산과 분해 작업을 해내는 이들이 없다면 지구상의 생명은 몇 초 사이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다른 살아 있는 것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키스는 생명을 “상호 의존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살기 위해서는 실제로 누군가가 죽어야 하는 것이다. 키스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명을 파괴하는 죽음”과 “생명의 일부인 죽음” 중에서. 키스가 보기에 채식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러한 ‘자연에 대한 무지(無知)’다.

키스는 정복군처럼 땅에 소금을 뿌리는 농업을 마치 인종 청소와 같다고 표현한다.

“사실 농업은 제대로 된 전쟁이 될 수 없다. 숲, 습지, 목초지, 비, 흙, 공기 등이 농업에 대항해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농업은 오히려 인종 청소 같은 것이다. 침략자가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원주민을 완전히 쓸어 내 버리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청소, 생물학적 학살이다. (중략) 이 과정은 폭력적이며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농업으로 생산되는 음식은 한입 한입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곡물 재배를 위해 북아메리카 대목초지의 98퍼센트가 사라졌고, 3.6미터가 넘던 표토는 이제 몇 센티미터 남지 않았다. 키스는 “대륙 전체가 산 채로 껍질이 벗겨져 가는 이 광범위한 규모”의 파괴를 채식주의자들이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는 이런 점을 놓치고 있다

▶ 곡물은 또 다른 화석 연료다
정치적 채식주의자들은 “인간이 먹을 쇠고기 1파운드를 생산하기 위해 소에게 4.8파운드의 곡물을 먹이는 관행은 막대한 낭비”라고 한다. 그러나 키스는 그들의 계산이 대부분 소에게 풀이 아니라 ‘곡물’을 먹이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나 가능한 수치들임을 지적한다. 키스는 정치적 채식주의자들이 말하는 ‘풍요로운 곡물’이 사실은 진짜 풍요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만큼 곡물을 생산하려면 비료를 사용해 과잉 생산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키스는 곡물 생산에 들어가는 비료뿐 아니라, 곡물의 파종, 수확, 가공, 운반에 필요한 기계를 움직이는 데도 모두 화석 연료가 쓰인다는 것을 지적한다.

“지구상에는 이제 60억 명 이상이 살고 있다. 주지할 점은 그중 수십억이 화석 연료 덕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화석 연료에 저장된 에너지를 먹을 수 있는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 에너지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가 없다. 천연가스와 원유가 점점 더 비싸지다가 결국 이용 가능한 범위를 넘는 선까지 비싸지면 현재 수준의 곡물 생산량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다지 타고 싶지 않은 배가 아닌가.”

이런 이유로 키스는 정치적 채식주의자들이 원하는 만큼 대량으로 생산한 곡물은 결국 “줄기에 달린 화석 연료”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아무리 의도가 숭고하더라도 정치적 채식주의자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 전혀 모르는 채 전 세계의 식생활을 계획하는 셈이다. 윤리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나 환경 운동가 존 로빈스(John Robbins) 같은 이들은 우리 모두 일년생 곡물만 기르고 동물은 전혀 기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표토, 물, 기후, 지형 등의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곡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비료는 어떻게 공급한다는 말일까?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먹는 음식에게는 무엇을 먹일 것인가?”

그래서 키스는 “환경 운동가라면서 왜 아직도 고기를 먹는가?”라는 환경 저술가 짐 모터발리(Jim Motavalli)의 말에 “환경 운동가라면서 왜 아직도 지역 생태계에서 생산되지 않는 음식을 먹는가?”라고 되받아친다. 그러면서 자기가 사는 곳의 땅과 물을 이해하고 지역 농민과 축산업을 지원할 것과, 현지에서 지속 가능하게 기를 수 있는 음식을 먹자고 제안한다.

▶ 곡물은 기아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채식주의에서는 곡물을 먹는 것이 모두가 먹고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키스가 보기에 이는 산업 자본과 권력의 영향력을 간과하는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거대 다국적 식품 기업들이 선진국 정부로부터 지급받는 보조금은 36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들이 전 세계 곡물 가격을 압도적으로 낮추고 있다. 이미 세계 곡물 교역의 절반을 카길과 컨티넨털이라는 두 회사가 장악하고 있고, 옥수수의 75퍼센트를 5개 기업이 통제하고 있으며, 콩 가공의 80퍼센트를 4개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형성시킨 낮은 가격과 생산 비용의 차액은 미 연방 정부의 돈, 다시 말해 미국 납세자의 돈으로 메운다. 이들 기업은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나 자신들로 인해 농장을 잃은 농민 등 사회적인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오직 주주에게만 책임을 진다. 또 생산 원가보다 싸게 책정된 곡물 가격은 채식주의자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공장형 축산업의 바탕을 이룬다. 풀을 먹던 반추 동물을 좁은 우리에 가두고 곡물을 먹여 속성으로 키우는 공장형 축산이 가능하게 된 것은 곡물 메이저들의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키스는 상품화된 저가 식품과 정치적 채식주의 윤리가 도달하는 종착역은 같다고 말한다. 바로 굶주리는 아이들이다.

“공장형 축산으로 생산된 동물성 제품을 거부하는 것은 동물과 지구를 위해 옳은 일이지만, 그 행위 자체로는 굶주린 사람 한 명의 배도 채울 수 없다. 배고픈 사람은 미국산 곡물을 살 돈이 없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계화를 배후 조종하는 사람들에게 더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멀리서 운송해 오는 값싼 식량 제품들은 유일하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인 지역 식량 생산을 파괴하고 만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국제 원조 기구도 세계 기아 문제의 해결책으로 채식주의를 권고하지 않는 것이다. 채식주의는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 배불리 먹는 정의로운 세상을 간절하게 염원하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해결책, 개인적으로도 실천할 수 있는 해결책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이해한다. 그러나 콩으로 만든 버거를 사는 것은 감정적으로 위안이 될지는 모르나 끈질기고 끔찍한 힘의 뿌리와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표를 확인해 보라.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인 기업들에게 당신의 돈이 가고 있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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