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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년 조조가 30살 때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다. 이때 기도위(騎都尉)에 임명되어 영천(潁川)에서 황건적을 토벌하고, 이 공적으로 제남(濟南)의 상(相)으로 승진, 거기에서 그는 역시 강력한 법을 세워 뇌물과 향락에 물든 상급 관리 8할을 파면하고, 당시 유행하던 사이비 종교나 미신 부류를 모두 금지한다. 그 후 동군 태수로 임명되지만 부임하지 않고 돌연 사퇴했다. 그리고 고향에서 사냥과 독서를 즐기며 은거 활동에 들어갔다.
금성의 한수(韓遂)와 변장(邊章)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수도 방위를 위해 전군교위(典軍校尉)로 임명된다. 그 무렵 영제가 죽고 대장군 하진(何進)과 원소는 환관 주살을 계획한다. 그런데 황태후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동탁(董卓) 등 각지의 제후를 소집하여 황태후에게 압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조조는 이 소식을 듣고 “일부러 제후들을 부르지 않더라도 환관의 우두머리만 처형하면 될 뿐, 그들을 모두 죽이려고 한다면 일이 탄로가 나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조조가 예상한 대로 동탁이 아직 도착하지 않는 사이에 하진은 환관들에게 주살되고 만다. 또한, 환관들도 원소에게 모두 주멸되고(189년 9월 22일(음력 8월 25일), 십상시의 난), 이 와중에 실권은 동탁의 수중으로 떨어진다. 이때, 진군교위였던 조조도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들었다. 권력을 장악한 동탁은 조조에게 협조를 구하지만, 조조는 거절하고 성을 탈출했다.
189년(중평 6년) 12월, 조조는 사비를 털어 군사를 모으고 원소를 맹주로 하는 반동탁 연합군에 가담하여 분무장군을 맡는다. 그런데 동탁군이 워낙 강력했으므로 산조(酸棗)에 집결해 있던 여러 제후 중 누구도 선뜻 선두에 나서지 못했다. 조조는 장막(張邈)과 힘을 합쳐 형양에서 동탁군과 싸웠고 적장 서영의 부대를 물리는 데 성공했다. 산조로 돌아온 조조는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 있는 제후들에게 동탁을 격파할 전략을 제시했지만, 이는 연합군의 모든 제후가 유기적으로 협력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했고, 단지 유력자들의 이합집산일 뿐이었으며 심지어는 맹주인 원소조차 연합군 내부의 견제로 수송로가 차단당해 꼼짝할 수 없었을 정도였던 연합군에게 이런 작전을 수행할 능력은 없었다. 한편 연합군의 맹주 원소는 손쉬운 방법으로 동탁을 견제하고자 했다. 바로 기존 황제를 시해하고 동탁에게 옹립되었다는 명분적 약점을 가지고 있는 당시 황실의 정통성에 도전하여 명망 높은 유우(劉虞)를 새로운 황제로 추대하려던 것이었는데, 원술(袁術) 등이 중심이 되어 이와 대립했고 이때 조조도 원소와 일시적으로 대립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 계책은 유우 본인의 거절로 실패하게 되었고 이후 구심점을 잃은 연합군은 사실상 해산되고 만다.
동탁 제거와 서주 공략까지
이때 조조가 동탁을 친 것이 계산된 행동으로 '자신이 패할 것을 뻔히 알고도 불구하고 오직 황제를 구출하기 위해 홀로 뛰어들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인망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얻었다. 원술은 손견(孫堅) 등을 앞세워 화웅(華雄)을 쓰러뜨리는 무훈을 세우고 있었다. 물론 순욱(荀彧)이 그를 그토록 예우하던 원소를 따르지 않고 굳이 조조를 따른 예의 경우 당시 황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등 노골적인 패권주의를 보여온 원소와 달리 조조가 황실의 권위를 회복시킬 것이란 기대를 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이 무렵 조조의 행보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보는 부류가 있었으나 중원재사와 형주-서주-양주에 걸쳐 둔피하였던 유생 중의 다수가 조조의 근거 있는 야망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더군다나 '양-패 사이에서 진인이 나타난다'라는 참설까지 유행하였다)
이후 원소와 제휴한 조조는 191년(초평 2년) 동군에 침공한 흑산적을 연주 전투에서 토벌하고 원소의 대리 교서(통감 등에서는 矯制라고 하여 비난하였다)에 의하여 동군 태수로 임명된다. 동탁이 여포(呂布)에게 주살(誅殺)되었다(192년 5월 22일(음력 4월 23일)). 같은 해 청주의 황건적 100만 명이 연주에 침공해 왔다. 당시 연주(兗州) 자사(刺史)였던 유대(劉岱)는 이를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고 만다(음력 4월).[2] 평소 조조와 가까웠던 제북상 포신(鮑信)은 조조를 연주 목으로 추대했다(구주춘추 등 기타 주석서에서 진궁). 조조는 황건적과 싸워 포신이 전사하고 오른손에 화상을 입어 동료 누이(婁異)에 의해 말에 올라타 구조되는 등 상당히 박전했다. 직후 사기가 땅에 떨어지자 조조가 친히 상벌에 대하여 확언을 주며 적의 퇴로를 예상하여 기병(奇兵)을 풀어 상하로 대파하였다(본기의 원문에 의하면 적의 둔영까지 다다랐다고 하니 하늘을 찌르는 기세였을 것이다). 이후 조조는 이들과 협상해 자기의 세력으로 영입하고, 그 가운데 정예 병력을 선발해 ‘청주병’으로 불렀다. 황건이었던 백성 백만 구(口)와 병사 30만을 흡수해 기반을 얻은 조조는 이때부터 반동탁의 영수로 기주에서 군림했던 원소에 대하여 자신의 치소 연주에 할거하며 중원 구출의 야심을 드러내었다.
조조의 서주 침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같은 시기 원소와 원술의 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원소는 형주의 유표(劉表)와 연합했고, 원술은 유주의 공손찬(公孫瓚)과 서주의 도겸(陶謙)과 손잡아 서로를 견제했다. 이때부터 다른 모든 세력과 마찬가지로 원소의 영향 아래 있던 조조는 인접해 있던 도겸과 싸우기 시작했던 듯하다. 또 조조는 원소와 연대해 각지에서 원술연합군을 격파하자마자 스스로 용병하여 마침내 원술이 본거지를 버리고 양주로 도망가게 하였다(5차례 싸워 모두 추격하였다). 이 직후에 도겸은 재차 연주 동쪽 태산군에 침공했고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살해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조조는 193년부터 194년(흥평 원년)에 걸쳐 2차례 도겸 정벌에 나서 서주 땅에서 지나가는 족족 적의 대항 의지를 말살시켜갔다. 《후한서》에 따르면 “주민 수십만 명을 살해하고 개와 닭 등 가축도 가차 없이 도살하였다. 이 때문에 사수(泗水)는 흐름을 멈추고 말았다.”라고 한다.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는 사이에 친우였던 장막과 연주를 지키던 진궁은 조조에게 반기를 들고 여포를 연주 목으로 내세웠다. 조조는 복양에서 궁지에 빠지고 어이없으리만치 전국을 휩쓴 메뚜기의 피해로 갑병까지 타격을 입지만 2년에 걸친 공방 끝에 마침내 연주를 평정하는 데 성공한다. 실제로 둔전병을 데리고 다니던 중 흉년을 만나 먹을 것을 찾으러 가고 남은 병사는 고작 1천도 셀 수가 없었다고 하니 피해가 극심하였다. 그러나 이 부대로 여포가 이끄는 진궁의 구원군 1만을 대타격하고 치중을 획득하였다. 손자병법 주석에 따르면 논밭 근처 제방에서 적을 도발하여 역격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196년(건안 원년)에는 헌제를 옹립하여 대장군으로 임명되고, 수도를 낙양에서 허창으로 옮긴다. 그와 함께 여러 개혁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같은 해에 조지와 한호(《진서》 선제기에서는 사마의)의 건의를 받아들여 둔전제를 시행해 농경을 전문으로 하는 농민을 널리 모집하여, 허도(허창) 주변에서 농업에 종사시켜 곡물 100만 석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리하여 전쟁에 없어서는 안 될 식량을 충실히 마련하여 천하를 장악할 수 있는 기반을 쌓는다.
이때 유비(劉備)가 여포에게 하비를 빼앗겨 조조 밑으로 도망을 온다. 참모 정욱은 “유비는 끝내 남의 밑에 남아있을 인물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제거할 것을 진언하지만, 조조는 다만 유비에게 먹을 것을 하사하였다.
관도대전과 적벽대전
197년 조조는 완(宛)에 출진하여 장수(張繡)를 항복시키지만, 나중에 그는 조조를 배신한다. 이 싸움에서 조조가 패하고 맏아들 조앙(曹昻)과 조카 조안민, 부하 전위(典韋)가 전사한다. 이때 조조는 맏아들 조앙의 죽음보다도 전위의 죽음을 더 슬퍼했기 때문에 아내와 이혼하게 된다. 198년 조조는 장수, 유표의 연합군을 안중에서 격파하고, 하비에서는 여포를 사로잡아 처형한다. 다음 해에는 원술을 토벌하고 장수를 다시 굴복시켜 그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원술 토벌에 유비를 파견한 일이 문제가 된다. 역시 서주 자사 차주(車胄)가 유비의 반란군에 습격을 당하고 만다. 별일 없었다는 듯이 조조가 친히 출진하여 유비를 격파하고 버림받은 처자식을 붙잡음과 동시에 관우(關羽)를 항복시켰다. 원소가 발밑으로 도망쳐온 유비에게 잠자리를 하나 내어주었고 마침내 원소와 천하를 놓고 자웅을 겨루게 된다.
원소와 천하 패권을 다투는 전초전은 먼저 백마에서 치러졌다. 여기에서 조조는 원소의 부하인 맹장 안량(顔良)과 문추(文醜)를 죽이는가 하면, 유엽의 진언에 따라 원소의 궁수부대에는 투석기로, 굴자군에는 참호로 대응하는 등 천재적으로 활약했지만, 날이 갈수록 점차 전황이 불리해지고 아군이 군량과 병참 부족에 시달리게 되면서 그 대담한 조조도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서 순욱에게 허도로 귀환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 상담을 구했는데, 순욱은 격려의 답장을 보내와 그곳에서 버티게 한다. 마침내 원소의 모사인 옛 친구 허유가 투항하고 고시와 오소에 있는 원소의 심장부인 병참사령부를 습격하기를 진언, 조조는 오소 기습전에 앞서 원소의 본진 습격에 대비해 방비를 단단히 한 다음 원소군으로 위장한 5천의 특공대를 이끌고 잠입, 오소의 식량과 군수 물자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림으로써 형세는 역전, 원소군은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이때 몰수한 전리품 중에서 원소와 내통하고 있었던 조조 부하의 편지가 무더기로 나왔다. 좌우에서 그들을 죽이라는 신하들의 진언에 조조는
“ 원소의 대군이 강했을 때는 나조차도 어찌 될지 알 수 없어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그러했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겠느냐? ”
라고 말하면서 편지를 읽지 않고 모두 소각, 내통한 자들은 용서해주고 대신 그 일은 전부 불문에 부쳤다고 한다. 그 후에도 북진을 계속하여 원 씨 잔당 세력을 철저히 격파했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이때 조조는 군사를 몰아 장성을 넘어 모돈(冒頓 또는 묵돌)을 죽였다고 한다. 모돈은 기원전 209년부터 기원전 174년까지 흉노의 선우(대족장)를 지냈던 사람으로 조조와는 4백 년 가까이 시차가 있는 인물이다. 조조의 모돈 살해는 나관중이 삼국지연의에서 꾸며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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