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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영원히 영광스러우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서 나자렛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가르침을 받으셨다.
그 아버지는 요아킴이고 어머니는 안나였다. 요아킴의 집안은 갈릴래아의 나자렛에 있었고, 어머니 안나의 집안은 베들레헴에 있었다.
요아킴과 안나는 주님 앞에서 평범하고 올바르게, 사람들 앞에서는 경건하고 흠 잡을 데가 없는 생활을 했다. 그들은 재산을 세 몫으로 나누었고,
한 몫은 성전과 그 관리인들에게 바치고, 한 몫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 한 몫은 자신들과 가족들을 위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년간 고결한 부부생활을 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자녀가 없었다.
그들은 하느님이 자녀를 주신다면 그 자녀를 주님을 섬기는 데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그래서 축제 때마다 성전으로 올라갔다.
봉헌 축제가 가까워지자 요아킴이 친척들과 함께 성전으로 올라갔는데, 그때 이사카르가 대사제였다.
대사제는 친척들과 함께 제물을 가지고 온 요아킴을 보고는 경멸에 찬 질문을 던졌다.
“자녀도 없으면서 왜 자녀가 있는 다른 사람들 틈에 끼여서 자녀가 있는 척하는 거요?” 그리고 자녀를 가질 자격이 없다는 하느님의 판단을 받은 사람은 제물을 바쳐도 하느님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성경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사제는, 자녀를 낳아서 그 저주로부터 먼저 풀려난 뒤에 하느님 앞에 제물을 바치러 오라고 말했다.
책망을 받고 수치감에 휩싸인 요아킴이 목장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동들이 있는 곳으로 물러갔다. 대사제가 한 말을 옆에서 다 들은 친척들이 대사제처럼 자기를 책망할까 두려워서 그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2장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동안 요아킴이 홀로 있을 때, 주님의 천사가 찬란한 광채 속에서 나타났다.
천사는 자기의 출현으로 놀라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이렇게 말했다.
“요아킴, 두려워하지 마라. 내 모습을 보고 근심에 잠길 것 없다. 나는 주님께서 보내신 천사인데, 너의 기도가 받아들여졌다. 너의 자선행위가 주님의 눈에 들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온 것이다.
주님이 너의 수치를 똑똑히 보셨고, 자녀가 없다고 억울하게 야단맞는 것도 다 들으셨다. 하느님은 자연상태가 아니라 죄악에 대해서 벌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그분이 어떤 사람의 자궁을 막아놓은 것은, 더욱 놀라운 방식으로 다시 열고 거기서 태어나는 아기는 욕정의 산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이 백성의 최초의 어머니 사라는 여든 살이 될 때까지 자녀가 없었지만, 노년기 끝 무렵에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을 통해서 모든 민족에게 축복을 약속한 것이다.
하느님의 총애를 받고 거룩한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은 라켈도 오랫동안 자녀가 없었지만, 그후 요셉의 어머니가 되었고, 요셉은 이집트의 총독이 되었을 뿐 아니라, 많은 민족을 굶주림의 위험에서 구해냈다.
민족의 지도자들 가운데 누가 삼손보다 더 힘이 세고, 사무엘보다 더 거룩하단 말이냐? 이 두 사람의 어머니도 한때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내 말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확신이 가지 않는다면, 노년기에 임신하는 예가 많고 또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자가 출산하고 놀라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여라. 그러니까 너의 아내가 딸을 낳을 테니, 그 이름을 마리아라고 하여라.
마리아는 네가 맹세한 대로 어려서부터 주님께 봉헌될 것이고,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마리아는 더러운 것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을 것이고, 일반 백성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오로지 성전 안에서만 말을 할 것이다. 이것은 마리아가 비방이나 의심을 받을 여지를 없애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에게서 놀라운 방식으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과거에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가장 높으신 하느님이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은 예수라고 하여라. 예수는 그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모든 민족의 구세주가 될 것이다.
내가 선언한 이 모든 것에 대한 증거를 주겠다. 너는 이제 예루살렘의 황금의 문으로 가거라. 그러면 아내 안나를 만날 것이다. 안나는 네가 여태껏 귀가하지 않아서 몹시 걱정하고 있는데, 너를 만나면 더없이 기뻐할 것이다.”
말을 마친 천사가 떠나갔다.
3장
그 다음에 천사가 요아킴의 아내 안나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허깨비를 본다고 생각하지도 마라.
왜나하면 나는 너의 기도와 자선행위를 하느님 앞으로 전달한 천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파견된 것은 네가 딸을 낳을 것이고, 그 이름을 마리아라고 부르며, 마리아는 모든 여인보다 더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마리아는 태어나자마자 하느님의 은총으로 충만하고, 삼년간 너의 집에서 양육되다가 그 후에는 주님을 섬기는 데 봉헌되어, 분별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성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마리아는 밤낮으로 단식과 기도로 주님을 섬기고, 더러운 것은 일체 피하고, 남자를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면에서 그 누구와도 비교가 안 되는 마리아는 남자를 전혀 모르는 처녀의 몸으로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아기는 자신의 은총과 이름과 업적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일어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거라. 황금의 문으로 가면, 내 말의 증거로서 네가 그토록 안부를 걱정하는 남편을 거기서 만날 것이다.
남편을 만나게 되면, 나머지 일들도 모두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라.”
천사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이 각각 자기가 있던 곳을 떠나 황금의 문으로 가서 만났다.
반갑게 만난 부부는 자녀의 출산 약속에 만족하고, 겸손한 사람을 높이 올려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주님을 찬미한 뒤에 귀가한 부부는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대감에 넘쳐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이윽고 안나가 임신하여 딸을 낳았다. 부모는 천사의 지시대로 마리아라고 불렀다.
4장
이윽고 삼년이 지났고 젖도 떼었기 때문에, 부모가 제물을 준비하여 동정녀를 성전으로 데리고 갔다.
성전 주변에는 시편 15편에 따라서 열다섯 개의 계단이 있었다.
성전을 산 위에 지었기 때문에, 바깥에 있는 번제의 제단에 접근하려면 반드시 계단을 걸어올라가야만 했다.
축복받은 동정녀이자 아기인 마리아를 부모가 계단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부모가 여행할 때 입고 있었던 옷을 벗고 관습에 따라서 좀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 동안,
주님의 동정녀가 다른 사람의 인도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은 채 계단을 하나씩 모두 올라갔다. 누가 보아도 분별의 연령에 도달했다고 여길 정도였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비상한 일을 동정녀의 어린 시절에 보여주셨고, 앞으로 마리아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인지를 이 기적을 통해서 증명해보이셨다.
그러나 부모는 율법의 관습에 따라서 제물을 바치고 자기네 맹세를 이행한 뒤에, 다른 어린 처녀들이 양육되는 성전의 별도 건물에 동정녀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5장
주님의 동정녀는 나이가 들면서 날이 갈수록 더욱더 완전해졌다. 시편에 따르면, 부모가 아이를 버렸어도 주님이 아이를 돌보아주셨기 때문이다.
날마다 천사들과 대화를 하고, 날마다 하느님이 보내신 방문자들을 맞이했고, 그 결과 모든 악을 피하고 모든 선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마리아가 열네 살 되었을 때, 사악한 무리가 그 어떠한 것도 비난할 여지가 없었으므로, 마리아를 아는 착한 사람들은 그 생활과 대화에 감탄했다.
그 무렵 대사제가 공식 명령을 내렸다. 성전에 사는 처녀들 가운데 열네 살 된 경우에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이제 충분히 성숙했으니까 관습에 따라 결혼해야 한다고 명령한 것이다.
다른 처녀들은 즉시 복종했으나, 오로지 마리아만이 복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부모뿐 아니라 자기도 주님을 섬기는 데 자신을 바쳤고, 게다가 주님께 동정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으며,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해서 그 맹세를 깨뜨릴 수는 없다고 복종을 거절하는 이유를 들었다.
대사제가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마리아의 맹세를 풀어줄 수도 없고,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또한 백성들에게 생소한 새로운 관습을 도입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다가오는 축제에 예루살렘과 인근 지방의 모든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가장 좋은 해결책을 자기에게 건의하라고 지시했다.
한자리에 모인 주요 인사들은 이 문제에 관해서 주님께 해답을 구하자고 의견 일치를 보았다.
모두 기도를 바치고 있을 때, 늘 하던 방식대로 대사제가 하느님의 지시를 받으러 갔다.
즉시 계약의 궤와 속죄소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거기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그 소리를 들었다. 동정녀를 누구와 결혼시킬 것인지는 이사야 예언서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하는 목소리였다.
이사야는 이사이의 줄기에서 한 지팡이가 나오고, 그 뿌리에서 꽃이 필 것이며,
주님의 영혼이 그 사람 위에 머물고, 지혜와 이해의 영혼, 의견과 세력의 영혼, 지식과 경건함의 영혼, 주님에 대한 두려움의 영혼이 그를 채울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예언에 따라서 대사제가 다윗 가문의 남자들 가운데 결혼할 연령에 도달했지만 미혼인 남자들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와서 제단에 올려놓으라고 지시했다.
지팡이에서 꽃이 피고 그 꼭대기에 주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습으로 앉아 있게 된다면, 마리아는 그 지팡이의 주인과 약혼해야만 했다.
6장
다윗 가문 출신인 요셉은 이미 나이가 매우 많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지팡이를 제단에 올려놓을 때 그는 지팡이를 놓지 않았다.
하늘의 목소리에 맞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자, 대사제가 하느님의 의견을 들으러 다시 갔다.
그러자 하느님은 모인 사람들 가운데 지팡이를 제단에 올려놓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바로 그 사람과 마리아가 약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요셉이 들통났다.
요셉이 지팡이를 가져오고 하늘에서 날아온 비둘기가 그 위에 앉자, 모든 사람이 동정녀의 약혼 상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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