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몰랐다, 도올 김용옥, 해방정국, 김일성, 이승만, 괴뢰정부, 동북항일연군, 맥아더, 3자회담, 스탈린, 해방 공백, 몽양 여운형, 외세지배, 건국준비, 소련건준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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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몰랐다, 도올 김용옥, 해방정국, 김일성, 이승만, 괴뢰정부, 동북항일연군, 맥아더, 3자회담, 스탈린, 해방 공백, 몽양 여운형, 외세지배, 건국준비, 소련건준

요즈음 내가 가깝게 왕래하는 친구로서 박소동朴小東이라는 인물이 있다.
P. 144 미국은 한국에 무지했다. 오직 미국의 괴뢰정권을 세워 한국의 영토를 안정적으로 친미세력권 내에 있게 만든다는 지배영역적인 관심만 우선했고, 인민의 삶이나 가치나 지향점에 대해 아무런 본질적 관심을 갖질 않았다.
P. 155 자생적으로 발전한 전국의 인민위원회는 “건준”과 연계되어 있었고, 여운형이라는 인물의 애국심, 사상적 포용성, 사심 없는 헌신, 기민한 대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따라서 “조선인민공화국”이 선포되자 일시에 전국의 인민위원회는 조선인민공화국의 지방정부조직으로 승격되고, 보다 조직적으로 세련화된다. 바로 이 시점이 제주4·3과 여순... 더보기
P. 234 제주4·3민중항쟁 지도부의 몇 사람이 남로당에 헌신하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허구적인 정체성이었고 실제 제주민중항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제주민중항쟁은 오직 핍박 받는 제주민중이 피압박의 막다른 골목에서 분노를 표출한 사건일 뿐이다.
P. 238~240 박진경은 영어를 잘했으며 지휘능력이 탁월하여 미군정의 신임이 두터웠다. 박진경은 제주도비상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강력한 “초토화진압작전”을 수행하였는데 중산간 마을을 누비고 다니면서 마구잡이식으로 주민을 잡아들였다. …… 박진경의 도민학살을 견디다 못해 그의 암살을 기획한 것은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였다. …… 문상길 중위는 ... 더보기
P. 250~251 여순민중항쟁은 결코 군인들의 항명이 아니다. 항명은 항명이되 항명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동일한 사건사태가 반란으로도, 항명으로도, 민중의거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해석의 차이는 인식의 차이이며, 그 인식의 변화를 가능케 하려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시각의 변화는 근인近因과 동시에 모든 원... 더보기
P. 260 어떻게 이순신은 좌수영에서 그토록 완벽한 전쟁준비를 완수할 수 있었는가? 이 미스테리 중의 미스테리는 우리민족사에 던져진 최대의 선물이다. 그러나 그 선물은 성웅 이순신의 예지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기적적 예지, 우리민족의 행운은 여수 지역의 하부구조와 여수 인민의 축적된 기술력, 그리고 제주인민의 지혜를 배... 더보기
P. 293~294 그러자 미군정은 도시민에 대한 식량배급을 명분으로 1946년 1월 25일 “미곡수집령”을 공포하고 식량공출을 단행하는데, 결국 미곡 자유시장을 포기하고 과거 일제 강점기의 공출보다 더 잔인한 강제수거를 단행했다. 미군정의 배급정책은 농촌에까지 적용되었는데, 그 결과 곡물섭취량은 오히려 식민지시대보다도 못한 처지가 되었다. …… 이... 더보기
P. 304~305 여순민중항쟁으로 이승만은 강고한 우익체제를 구축했다. 예비검속, 연좌제를 실시했고, 보도연맹을 창설했다(30만 이상을 죽임). 군대로부터 완벽히 좌익세력을 청산하는 숙군사업을 완성했으며, 반민특위활동에 밀린 친일경찰까지도 대거 군대로 들어갔다. …… 경찰병력이 확대되면서 서북청년단원들을 대거 정규경찰화 시켰다. 그리고 국민의 이동... 더보기
P. 65 우리는 ˝대장경˝ 하면 으레 대장경은 중국 것이고 그 중국 것을 가져다가 고려에서 새긴 것 정도로만 생각하는데, 모든 역사적 국면에 있어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중원중심적 사고˝는 참으로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 딸기홀릭
P. 135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다! 이완용이는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 이놈은 아직 우리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은 놈이다!˝ - 딸기홀릭
P. 166 다시 말해서 좌익· 우익이 우리나라에서는 사상신념구조에 대한 상이점으로 생겨난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신탁통치를 둘러싼 의견대립의 문제로써 형성된 관념이었다는 것이다. - 딸기홀릭
P. 168 ˝신탁˝이라는 말이 “식민통치˝를 연상케 하는 자음이 많이 들어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 ˝신탁trusteeship˝이 또 하나의 ˝식민통치colonial rule˝인듯한 인상을 일반에게 줄 수도 있으나, 실제의 의미는 ˝후견guardianship˝의 뜻이었다. - 딸기홀릭
P. 191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평등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평등이란 오직 원초적으로 신자信者와 불신자不信者의 이원적 가름 위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악마이며,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믿는 자들의 눈에는 불신자들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물론 근대로 들어오면서 이러한 생각은 수정되지 않을 수 없었고 다... 더보기 - 딸기홀릭
P. 272 이 책은 역사서술이 아니라 우리 의식에 던져지는 방할이다. 가치를 추구하는 자라면 이 책을 읽은 후 얻는 깨달음을 만세 만민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 딸기홀릭
조선왕조는 분명 확고하게 1910년까지 지속되었고 모든 사람이 왕조적 멘탈리티 속에서 살았는데, 불과 9년 만에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민주공화국˝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신비롭기 그지없다. - 3wed
일본제국주의의 패망으로 생긴 공백에서 일어난 새로운 냉전질서의 패권투쟁을 산발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한국의 6·25전쟁, 그리고 인도차이나전쟁-월남전쟁에 이르는 1945년부터 1975년까지, 그러니까 일본제국의 패망에서 미제국의 패퇴시점까지의 동아시아역사를 ˝동아시아 30년전쟁˝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더보기 - 3wed
민주주의는 어떤 국가든지 그 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에 관한 추상적 원리일 뿐이며, 그것은 어디서나 다른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며, 고정된 실체가 있을 수 없다. - 3wed
결정적인 것은 최전선에 선 가장 용감한 사나이들은 서울시내 시가 곳곳의 주요 코너를 지키고 있었던 신문팔이, 구두닦이, 껌팔이, 성냥팔이, 넝마주이 같은 시민의 삶에서 일상적 의식의 커텐에 가려져 있던 최하층의무학자 젊은이들이었다. - 3wed
˝해방”을 예견했고 준비했고 또 구체적 대책을 마련했고 실제로 패자와의 담판을 벌인 유일한 인물은 몽양이었다. - 3wed
나는 말한다! 김구가 정치적 감각이 기민한 사람이었다면, 임시정부의 적통성의 인정을 기다리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곧바로 8월상순 해방 전야에 혈혈단신으로라도 귀국하여 여운형과 같이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었어야 했다. - 3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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