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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years ago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정치가. 이름은 이오(夷吾), 자는 중(仲)[1]영상(潁上) 출신. 춘추시대의 춘추오패 중 첫 패자인 제환공을 보필한 1등 공신. 관자라고도 한다. 절정의 우정을 일컫는 사자성어 관포지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 일생[편집]
2.1. 불우한 성장기[편집]
일찍 홀로 된 노모를 모시고 사느라 가난하였다. 젊어서는 장사를 했으나 결국 말아먹어 친구인 포숙에게 의지해야 했고 - 곤궁함을 해결하기 위해 관리가 되었으나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군주에게 욕만 먹고 세 번이나 관직에서 쫓겨났다. 전쟁터에도 세 번이나 출정했으나 세 번 모두 대패하고 전장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단 이때의 관중은 낮은 하급관이었던 만큼 패배가 관중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이렇게 실패를 연달아 하다보니 사람들에게 인정을 못 받고 관중 본인도 마음고생까지 많이 했다. 그의 먼치킨스런 능력은 처음부터 타고 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온갖 실패를 겪으며 얻은 뼈 아픈 교훈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당시 제나라의 군주 희공 역시 상당히 선견지명이 있는 인물이었던지 제희공이 명성이 있던 포숙에게 셋째 아들인 소백(小白)을 맡기고[2] 둘째 아들인 규(糾)의 보필은 관중과 소홀에게 맡긴다. 제양공이 즉위를 하자 좌전에 따르면 포숙은 무능하고 절제력없는 제양공이 정치를 하면 반드시 난이 일어날 것이라며 소백을 데리고서 동남쪽의 가까운 소국이었던 거나라로 피신하였다.

과연 포숙의 예측대로 제양공은 근친상간 + 근친상간으로 인한 질투로 동맹인 노나라 군주(노환공) 살해, 공족인 공손 무지(公孫 無知) 등에게 원한을 사는 등등의 어마어마한 삽질을 거듭하다가 최전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국경수비를 하던 장군인 연칭에게 1년만 국경수비를 하면 교대 병사를 보내주겠다고 하다가 보내주지 않으면서 큰 원한을 사서 결국 공손무지를 옹립한 연칭의 부하들에게 살해된다. 난이 일어나자 관중은 규를 데리고 포숙이 도피한 거나라에 비해 대국이었던 노나라로 달아난다. 노나라도 대국인 제나라를 도와 제나라 군후를 세운다면 자신들에게도 큰 이득이 될 테니까 크게 환대받는다.

난을 틈타 무리를 해서 권좌에 올랐던 공손 무지(公孫 無知) 역시 얼마 못 가 살해당하니 제 나라의 명문 가문이었던 고씨와 국씨들이 주도하여 소백을 군주로 세우고자 포숙과 소백을 불러들인다. 이에 관중은 거리도 멀고 + 소백은 고씨와 국씨 + 포씨라는 제나라 최고 명문가들 전부의 비호까지 받고 있으니 달리기 싸움에서는 패배할 것이라는 걸 느끼고 자신이 모시는 규(糾)를 군후에 올리기 위해 홀로 먼저 말을 달려 포숙이 모시던 소백(小白), 즉 훗날의 제환공을 활로 쏴서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관중이 쏜 화살이 소백에게 맞긴 했는데, 허리띠의 쇠고리에 맞아서 목숨을 구했다. 관중은 소백이 쓰러지자 소백이 죽은 줄 알고 공자 규를 모시러 왔으나 일부러 죽은 척한 소백은 잽싸게 수도로 가서 공위에 올랐다.[3]

그러나 관중은 포기하지 않았고, 노나라의 장공을 부추겨 노나라의 병사를 동원하여 제나라를 침공한다. 그러나 대국인 제나라를 상대로 춘추시대 동네북인 노나라가 이길 리가 없었고 노나라 군대는 전멸. 노나라의 장공은 심지어 타던 수레도 잃어버리면서 도주하였다. 그렇게 제환공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노나라로 도망친 공자 규 및 관중과 소홀도 잡아죽이려 하나 이때 포숙이 관중과 소홀을 얻어야 사직을 안정시킬 수 있다며. 관중과 소홀을 등용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포숙은 직접 군대를 끌고 노나라로 가서 공자 규는 장공이 직접 죽이고, 관중과 소홀은 제환공을 죽이려던 암살자니까 직접 죽여야 성이 풀릴 것 같으니 내놓아라! 라며 노나라를 협박한다. 이에 노나라의 시백이라는 예리한 자가 관중은 천하의 기재라며 그를 노나라에서 쓰거나, 쓸 수 없다면 죽여서 보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포숙이 이를 알고 막은 끝에 결국 공자 규는 장공에 의해 죽고 관중과 소홀은 포로로서 제나라로 끌려간다.

그러나 끌려가기 전, 소홀과 관중의 대화가 관자에 기록되어 있는데, 관중은 소홀에게 두려운가 하고 물으나, 소홀은 자신들이 제나라로 간다면 제환공은 관중에게는 재상을 맡길거고 자신은 그 옆에서 보필하게 할 텐데, 이미 주인을 죽게 한 자가 또 다시 다른 주인을 섬긴다면 자신을 두 번 욕보이는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죽어서 죽은 주군을 보필할 테니, 관중 너는 살아서 이름을 날리라"고 말하고 자결한다. 이후 관중은 관자에서, "공자 규가 죽자 소홀은 따라 죽었는데 자신은 살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치욕도 모르는 자라고 욕했으나 포숙만은 자신을 욕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개를 위해 죽는 것 보다 공명을 밝히지 못한것을 아쉬워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제나라로 도착한 관중. 제환공은 정적이자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었던 관중을 죽이려고 하나 포숙이 이를 만류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나라만 다스리시려면 저나 습붕[4][5] 정도로 충분하지만 패자가 되어 여러 제후를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되고 싶다면 관중 없이는 안 됩니다.
그러니 지난 원한은 잊어버리고 관중을 과감하게 발탁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제환공은 과거 자신을 화살로 맞혀 죽이려 했던 일을 잊고 관중을 재상으로 임명한다. 이로써 관중은 죽음의 문턱에서 전전하다가 거의 하루아침에 일국의 재상으로 변신하는 막장드라마 수준의 변신을 하게 된다.
2.2. 명재상이 되다[편집]
그러나 일껏 죽일 목숨을 살려주고 등용했지만 관중은 별다른 의견 개진이 없었다. 환공이 이상해서 캐묻자 "낮은 지위로 높은 지위를 다스릴 수가 없어 자중하고 있습니다"하고 답했다. 환공은 아차 싶어서 관중에게 가장 높은 상경(上卿) 벼슬을 내렸다. 그런데 관중은 여전히 침묵 모드였다. 환공이 다시 캐묻자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를 다스릴 수가 없어 자중하고 있습니다"하고 답했다. 환공은 또 아차 싶어서 관중에게 엄청난 재물을 내려줬다. 그래도 관중은 여전히 침묵 모드. 환공이 또다시 캐묻자 "높은 벼슬과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도 공족은 다스릴 수가 없어 자중하고 있습니다"하고 했다. 그러자 환공은 관중에게 중보(仲父)[6][7] 호칭을 내렸다. 쉽게 말해 임금도 관중을 보면 어른이라 부르니 나머지 사람들이야 관중 앞에서 알아서 기라는 거(…) 이 정도로 실권을 요구한 관중이나, 그걸 선뜻 내준 환공이나 정말 징한 사람들.[8]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된 관중은 제환공을 도와 상비군 조직, 상공업 육성 및 법규 제정등을 통하여 부국강병을 꾀하였다. 한편 대외적으로는 동방이나 중원(中原)의 제후(諸侯)와 9번 회맹(會盟)하여 환공에 대한 제후의 신뢰를 얻게 하였으며, 남쪽에서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초(楚)나라를 누르려고 하였다. 결국 관중의 활약으로 인해 제나라는 압도적인 국력 뿐 아니라 제후 열국의 존경을 받는 - 춘추시대 최초의 전국패자로 부상한다

그에 대해 논어에 다음과 같은 말이 기록되어 있다.
子貢曰
자공이 말하길,
管仲 非仁者與。桓公 殺公子糾 不能死 又相之。
관중은 어진 이가 아니잖습니까? 환공이 (본래 주인인) 공자 규를 죽였는데, 능히 죽지 않고 또 (환공을) 도왔습니다.
子曰
공자가 말하길,
管仲相桓公覇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 受其賜。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후를 제패하고, 천하를 한 번에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 그 도움을 입고 있다.
微管仲 吾其被髮左衽矣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관중이 아니면 우리는 (오랑캐처럼) 머리를 헤치고 왼편으로 옷을 매었으리니, 어찌 필부필부(평범한 사람)같이 알량한 절개를 위해서 도랑에서 스스로 목 매어 알아주는 이 없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9][10]

논어(論語) 헌문(憲問)편

팔일편에서 공자는 관중이 아내를 셋이나 두고, 개혁 정치를 하면서 세금을 엄청나게 걷고, 임금이나 할 수 있는 것을 자기 집안에 두는 사치를 부리는 등 그릇이 작은 사람이긴 하지만, 천하를 바로 세울 만큼 능력은 있다면서 - 즉, 법도를 벗어난 것은 비판하지만 그의 업적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듯하다.[11][12]
2.3. 제환공의 신임[편집]
관중은 아래 서술한 포숙과 우정 못지 않게, 주군인 환공의 신임으로도 유명하다. 흔히 용인술(用人術)에서 말하는 의인물용용인무의(疑人勿用, 用人無疑)-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고,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제환공과 관중. 거의 정무를 관중이 했다고 할 정도로 제환공은 간섭하지 않았다. 심지어 총애하던 간신배 역아와 수초[13]가 관중을 모함했지만, 제환공은 결코 귀담아듣지 않았다. 제환공이 아홉차례 회맹을 가진 이야기 못지 않게, 이 대목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한번은 관중은 환공에게 평소 품고 있던 여러가지 포부를 설파했고, 환공은 이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다 환공이 물었다.
제환공: "내가 워낙 여자와 사냥을 좋아하는데 장차 패업을 이루는 데 해롭지 않을까?"스스로 인정한 거 보니 참 여색과 사냥을 즐긴 모양이구만
관중: "해롭지 않습니다."[14]
제환공: "그럼 무엇이 해로운가?"
관중: "어진 이를 쓰지 않으면 해롭고, 어진 이를 알면서도 쓰지 않으면 해롭고, 어진 이를 쓰되 신임하지 않으면 해롭고, 어진 이를 쓰면서도 소인배를 함께 끼워두면 해롭습니다."
연산군이 이 글을 좋아합니다 좋아하긴 뭘 좋아해 어진이도 안 쓰고 신임하지도 않고 소인배만 중용한 군주인데

그러나 제환공이 관중의 말을 유일하게 듣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간신배인 역아, 수초, 개방을 중용한 것. 이들을 중용하는 것을 보고 관중은 그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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