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문화사, 김풍기, 앵무배, 한림별곡, 하사품, 고려시대, 뇌물, 이백, 양양가, 가마우지, 노자표, 사인검, 칠성검, 도검, 부채, 청심환, 분재기, 벼루, 강세황, 민초

3 years ago

역사/문화 한국사 조선시대 조선시대생활/문화
선물, 사람 사이의 ‘정’이자 한 사회를 드러내는 ‘키워드’

선조들은 ‘어떤’ 물건을 ‘왜’ 주고받았을까?
일상의 부족함을 메운 경제이자 사회적 상징, 선물로 들여다보는 사람살이와 시대상 그리고 마음들
선물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해왔다. 특히 물자가 부족했던 근대 이전 사회에서 선물은 빈한한 일상을 보완하는 하나의 경제방식이었기에 음식과 온갖 문구류, 의복과 가축 등 생활에서 소용되는 수많은 물건이 선물로 사용되었다. 또한 선물은 단순히 물건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뜻을 전하는 매개이기도 했다.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술잔과 도검, 선비가 벗에게 보내는 종이와 벼루,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기는 재산 분배록인 분재기,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며 새롭게 만날 사람에게 전할 요량으로 챙긴 청심환과 부채……. 선물은 이렇게 시대와 상황, 문화에 따라 품목과 의미가 달라졌다. 그래서 선물에는 주고받는 사람 사이의 정서적 특별함과 동시에 사회적 상징이 담겨 있다.

《선물의 문화사》는 임금부터 사대부, 민초에 이르기까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지탱하고 인간사를 풍요롭게 이끈 19가지 선물을 담았다. 상대에게 소용될 것 같아서, 지금 시절에 좋은 물건이 생겼기에, 격려나 위로 등 특별한 뜻을 담아, 아니면 ‘그냥’ 보내온 선물은 시대를 들여다보는 좋은 창이자 인간사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이다.책을 펴내며 - 물건에 정성을 실어 삶 속으로 들여보내는 마음

1장. 시절과 벗하고 싶은 마음의 징표
달력, 내 시간 속으로 그대를 부르는 초대장
단오부채, 호된 더위와 함께 나쁜 기운을 날려 버리리
지팡이, 어디든 걸림 없이 다니다 내게도 찾아와주오
분재기, 이승에서의 내가 마지막으로 전하는 고마움
버드나무, 새잎 나거든 저를 생각해주세요

2장. 사대부의 품격을 두루 살핀 가치
매화, 분매가 필 때 우리, 술과 붓을 들고 만나오
종이, 문사의 얼굴에 생기를 돌게 하는 반가운 선물
앵무배, 모름지기 이 술잔으로 마음껏 마시고 취하라
도검, 전장과 일상의 삿됨을 모두 베어버리리
벼루, 내면의 단단함과 학문의 성장을 바라노라

3장. 의복에 담아 보내는 멋과 바람
갖옷, 그대에게 가죽옷을 내리니 그 충성 변치 말라
짚신, 낮은 자리에서 올리는 그리움과 존경
화장품, 존재했지만 기록되지 않은 여인들의 필수품
안경, 병든 눈에 유리를 끼니 문득 밝아집니다

4장. 맛 좋고 귀한 것을 나누고 싶은 인심
차, 속세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잠시 쉬길 바라네
청어, 돌아오는 그 댁 제사에 이 고기를 올리시오
청심환, 한 알에 험한 여행길이 모두 풀리네
귤, 빌린 책 돌려드리며 보낸 달디단 귤 세 알
술, 한잔 기울이면 하늘도 땅도 보잘것없어

책을 마치며- 선물, 우리와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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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도판목록
책 속으로
책력을 보면서 제사 지내기에 적절한지 여부를 살피고 아름다운 절기를 점치는 것은 바로 책력의 기능에서 비롯한다. ‘책력’을 지금은 달력으로 번역하지만, 그 단어에 ‘책(冊)’이라는 글자가 들어있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한 해의 날짜를 나열한 것을 책으로 만들었다는 의미인데 이 책력에는 단순히 날짜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책력에 수록된 것을 차례로 보면 옛사람들이 책력을 날짜를 보기 위해서만 필요로 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대통력(大統曆), 숭정력(崇禎曆), 시헌력(時憲曆) 등을 사용했는데, 시헌력은 18세기 후반부터 〈시헌서(時憲書)〉라는 제목으로 유통되었던 책력이다. 이 책의 첫 페이지에 해당 연도의 연대가 표기되어 있고, 정월부터 12월까지 큰 달과 작은 달의 표시, 윤달, 분지 등 절기 및 그것의 정확한 시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달력, 내 시간 속으로 그대를 부르는 초대장 중에서

“내 나이 50세가 되니 병이 든 데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조카딸인 김경순의 처를 데려다 함께 살았노라. 여러 가지로 효성스러운 봉양을 받아서 정의(情義)가 깊고 중하였다. 이에 내가 갈아먹던 논 16마지기를 남겨준다.”
적지 않은 토지를 질녀 내외에게 주면서 쓴 내용은 참 감동적이다. 노년의 병과 쇠약함으로 자신의 삶이 이제 곧 끝나리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고, 자신을 지성으로 봉양해 준 조카딸 부부에게,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토지를 나누어 준다는 글을 남긴 것이다. 이 글에서 내 눈에 깊이 들어온 것은 ‘정의심중(情義深重)’이라는 표현이었다. 자식 없이 홀로 살아가는 숙부를 위해 조카딸 부부가 온갖 정성으로 자신을 봉양해 준 것,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그들에게서 느꼈을 고마운 마음이 저 네 글자 안에 오롯이 스며있다고 느껴졌던 탓이다.
- 분재기, 이승에서의 내가 마지막으로 전하는 고마움

어떤 임금은 신하들과 술자리를 마련하고 양껏 마신 뒤 너나없이 한데 어울려 〈한림별곡〉 같은 인기곡들을 부르며 춤을 추기도 했다. 임금으로서의 체통을 벗어던지고 술에 취해 노래와 춤으로 한때를 보내는 모습에서, 정치를 도외시하는 방탕한 모습보다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짓눌리다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한 인간으로서의 일탈을 발견한다. 아쉽게도 늘 그런 자리를 만들지 못하거나 성격상 함께 즐기지 못하는 임금이라면, 혹은 신하들을 격려하고 포상하는 차원에서 술을 대접하고 싶었던 임금이라면, 그들에게 술을 하사하면서 선물로 앵무배 같은 것을 슬쩍 끼워서 내려주었을 것이다. 예종은 승정원 관리들에게 술과 앵무배를 내리면서 ‘모름지기 마음껏 마시고 취하라’고 한 바 있다.
-앵무배, 모름지기 이 술잔으로 마음껏 마시고 취하라 중에서

도검이라고 해서 반드시 호신용이나 자격용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사물을 베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추가되었다.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효험이 있어서 가장 선호되었던 것은 바로 사인검(四寅劍)이다. 육십갑자로 연월일시(年月日時)를 헤아리던 시절,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만들어진 검을 사인검이라고 부른다. 조선 중기의 문장가 장유張維는 신익성申翊聖에게 사인도를 선물로 받고 지은 시 〈사인도가(四寅刀歌)〉의 주석에서 사인도가 잡귀를 물리친다고 하는 속설을 소개하고 있다. 사인검은 만들 수 있는 때가 있기 때문에 제작이 쉽지 않았다. 재료와 장인이 있어도 시간이 맞아야 하기에 미리 계획해서 만들어야만 했다. 지금도 사인검이 잡귀를 물리치는 신묘한 힘이 있을 뿐 아니라 다른 검에 비해서 예기(銳氣)도 뛰어나서 최고의 검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전부터 계획된 제작에서 오는 잇점 때문이리라.
- 도검, 전장과 일상의 삿됨을 모두 베어버리리 중에서 닫기
출판사 서평
선물경제의 조선, 선물로 시대와 사람을 읽는다

《선물의 문화사》에는 모두 19가지 선물이 등장한다. 이 물건은 대부분 경제적 틈새를 메우는 것임은 물론, 그 시대에 꼽히는 유행 아이템이었다. 근대 이전 선조들의 선물은 일종의 경제방식이었다.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 사람들은 선물을 통해 일상을 채웠으며 어려운 처지의 주변을 도왔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조선의 선물 문화를 ‘선물경제(膳物經濟)’라 명명하기도 한다.
선물은 문화권이나 시대, 그것을 주고받는 맥락 등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선물은 주고받는 사람 사이에 공유되는 ‘의미’가 있어야 그 기능을 제대로 한다. 선비가 매화 가지를 선물로 보냈을 때는 매화가 가지는 절의, 고결함 등이 그 안에 들어있다. 왕이 신하들에게 앵무배(鸚鵡杯)를 하사했을 때는 이 술잔에 술을 마시면서 한껏 즐기라는 풍류 넘치는 당부가 들어있다.
《선물의 문화사》에서는 하나의 물건을 누군가에게 보냈을 때 그 시대 문화와 상황, 주고받은 사람 사이의 일들을 고아하게 소개한다. 하여 단순히 물건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을 넘어 시대와 인물을 가늠하고 그들이 나눈 뜨끈한 마음과 뜻을 그려보도록 이끄는 것이다.

풍부한 시각 자료, 아름다운 표현들로 만나보는 선조들의 이야기

《선물의 문화사》는 풍속화와 산수화, 고문서 자료, 실물 사진 등으로 ‘선물’을 다채롭게 꾸몄다. 정선, 신윤복 등 잘 알려진 명사들의 작품은 물론 유숙, 전기 등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소개한다. 또한 한시에 조예 깊은 저자가 아름답게 번역한 한시와 간찰(편지) 등은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앵무배와 율곡벼루 등의 실물 도판도 담아 선조들이 나눈 선물의 면모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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