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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years ago

머리말

뇌과학이란?
1. 뇌과학과 뇌과학자에 대해 자주 받는 질문들
2. 세상을 보는 시각을 여는 ‘질문’
3. 뇌과학자는 뇌과학에 대해 얼마나 알까
4. 정합성과 체계를 갖춘 지식
5. 성인의 해마에서는 신경세포가 새로 생길까, 생기지 않을까
6. 상상 너머 실제를 본다는 것
7. 뇌 속 신경세포 860억 개, 그걸 어떻게 다 셌지?
8. 과학 연구와 사회의 협업

단절에서 연결로: 우리 뇌를 다시 보다
1. 뇌가 컴퓨터보다 효율이 높은 이유는?
2. 몸과 마음, 생명이라는 하나의 불꽃이 만들어낸 두 개의 그림자
3. 감정은 ‘하등’하지 않다
4. 하루 24시간: 빛의 리듬, 삶의 리듬
5. 협력하는 두 뇌의 동기화
6. 나를 위해 너를 공감한다
7. 장내 미생물과 사회성

미국에서 약리학 수업을 들을 때의 일이다. 교수님은 신약 개발 과정을 설명하면서, 임상실험에서 후보 약물의 효과가 플라시보(placebo) 효과보다 좋아야 한다고 하셨다. 플라시보 효과란, 의학적 처치 자체가 아닌, 의학적 처치에 대한 환자의 믿음이 환자의 몸에 치료 효과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임상실험을 할 때는 실험 참여자를 임의로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쪽 집단에는 후보 약물을 주고, 다른 한쪽에는 효과가 없는 가짜 약물을 준다. 이 외에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했는데도 두 집단에서 병의 경과가 다르면, 이 차이는 후보 약물의 덕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짜 약물을 처방한 집단에서도 증상이 일부 개선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약을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든 플라시보 효과를 줄이는 실험을 고안하고, 플라시보 효과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 수업을 듣던 내게는 이상하게 들렸다. 환자 입장에서야 약물로든 플라시보 효과로든 낫기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플라시보 효과는 공짜가 아닌가! 그래서 교수님께 플라시보 효과를 왜 치료에 이용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만일에 국내 연구진이 이 연구를 수행했다면,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자폐증의 치료법 발견”이라는 기사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동안 이런 제목의 기사가 많았던 것에 비해서는 치료법이 아직 나오지 않은 질병들(예: 치매 등)이 제법 많다. 이는 이와 같은 연구 결과가 사람에게 적용되려면 무수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락토바실루스 루테리가 뇌의 다른 영역, 다른 행동, 다른 생리작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이 연구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자폐 범주성 장애에도 효과가 있을지, 오랜 기간 투여해도 괜찮을지, 생쥐가 아닌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과정에는 대개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고, 많은 후보 약물(또는 치료법)이 사람에게 유용하지 않다고 판명되어 낙오한다.
_“장내 미생물과 사회성” 중에서, 104쪽

읽고 김이 샜을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자의 뇌, 여자의 뇌라고 했을 때 궁금해하는 것은 뇌의 부피라든가, 이름조차 낯선 어떤 단백질의 발현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개는 ‘남성의 뇌가 크니까 남성의 머리가 더 좋다는 의미냐, 남녀가 어학 능력이나 수학 능력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냐’와 같은 능력이나, ‘여성이 더 감정적이고 남성이 더 이성적이라는 것이냐’와 같은 성격의 차이를 궁금해한다. 이런 차이가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게 아닐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다.
주로 사회적인 편견과 관련된 이 항목들은, 남녀 간에 차이가 없거나 경미하여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밝혀졌다. 1990년부터 2007년 사이에 이뤄진 242개의 연구의 데이터(무려 120만 명의 아동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를 분석한 메타 연구에 따르면 남녀의 수학 능력에는 차이가 없다고 한다. 다른 메타 연구들도 수학 능력뿐만 아니라, 언어 능력, 공격성, 리더쉽, 인성, 도덕적 추론 등 많은 부분에서 남녀 간에 차이가 없거나 작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_ “여자의 뇌, 남자의 뇌 따윈 없어” 중에서, 222쪽 닫기
출판사 서평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는 뇌과학의 모든 것
뇌과학의 성과와 한계, 가능성을 한 권으로 만나다

송민령의 명쾌하고 젊은 뇌과학 이야기

여자와 남자의 뇌는 어떻게 다른가요? 일반인은 뇌는 10퍼센트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뇌과학에 관해 궁금했던 모든 것, 무엇이든 알려드립니다. 사람들은 뇌과학에 관해 궁금한 것이 많다. 뇌를 알면 사람을, 나를 더 잘 알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이 책의 저자 송민령은 지난 책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를 내고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독자와 소통해왔다. 그때마다 독자들이 던진 여러 질문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대중이 뇌와 뇌과학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뇌과학자로서 뇌과학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잘못 알려진 속설이나 왜곡되어 전달되는 연구 결과가 많아서 아쉬움도 많았다고 한다.

저자는 뇌과학이 답해주리라 기대하는 질문들이 감정과 이성에 대한 질문이거나,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 ‘천재의 뇌’, ‘효과적인 공부 방법’처럼 사회적인 맥락에서 생겨난 질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런데 뇌과학은 신경계의 원리를 탐구하는 한 분야로, 저러한 질문들에 직접적인 답을 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질문은 심리학, 인지과학, 행동 경제학같이 뇌를 직접 보지 않고 마음과 행동의 여러 측면을 다루는 학문이 더 잘 대답해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학문의 성과들이 뇌과학으로 포장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까지 뇌의 생물학적인 특징으로 환원하려는 시도가 만연하면 자칫 뇌과학이 악용될 수 있다고도 경계한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뇌과학에 관해 궁금해하는 것을 바탕으로, 그것에 답하며 뇌과학이 어떤 학문이고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우리가 뇌과학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진솔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뇌과학이 우리 삶과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뇌과학은 ‘뇌’만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뇌과학인가?

일단 ‘뇌과학’이 어떤 학문인지 다시 생각해보자. ‘뇌과학’ 하면 당연히 ‘뇌’만 탐구할 것 같지만, 해외에서는 ‘뇌과학(Brain Science)’보다는 ‘신경과학(Neuroscience)’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신경계는 온몸에 퍼져 있고 뇌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므로, 세계적으로 쓰이는 ‘신경과학’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한국에서 ‘신경과학’ 대신 ‘뇌과학’이라는 표현이 정착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뇌과학’이라는 이름 때문에 뇌과학이 마음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줄 것이라고 오해받는 부작용도 생겨난다. 어쨌든 뇌과학이 ‘뇌’만 연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기억해둘 만하다.
뇌과학에 접근하는 방식, 뇌과학을 수행하는 방식도 엄청나게 다양하다. 심리학의 배경으로 한 뇌과학자는 뇌영상 기술로 사람을 연구하는 경우가 많고, 컴퓨터과학을 배경으로 한 학자는 심리 현상의 모델을 단순화시켜서 작업하며, 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학자는 동물 실험을 수행한다. 같은 학문이지만 바라보는 관점과 배경에 따라 뇌와 신경 활동을 다르게 해석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저자가 겪은 변화를 통해 뇌과학이 발전한 흐름을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수도 있다. 저자는 아직 30대 중반의 젊은 과학자이지만, 약 10년 전 학부 과정을 다닐 때만 해도 대학에 뇌과학과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알고 싶은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다른 과 수업을 찾아 들어야만 했고, 그러다 보니 수학과 생물학을 복수전공하고 전자공학과 수업도 듣게 되었다. 이제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서 대학에 뇌과학과가 생겨 한 학과 내에 여러 학문이 교차하는 다학제적 특성을 띄게 되었다. 현재에는 미국에서 주도하며 ‘휴먼 게놈 프로젝트’에 비견할 만한 기획인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유럽에서 추진하는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 등이 진행되어 이 분야에 기대와 역량이 집중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단순히 뇌과학의 연구 결과만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뇌과학이라는 학문의 범위와 연구 방식, 미래의 전망 등 더 넓은 관점에서 뇌과학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과 감성으로 풀어낸 ‘과학 이야기’,
따뜻하고 사려 깊은 과학책의 등장

송민령은 2017년 첫 책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를 내고 많은 관심을 받았다.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는 뇌과학의 최신 연구 방법과 성과를 소개했지만, 연구의 원리와 의의를 세세하게 설명하다 보니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감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뇌과학의 성과를 설명하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그것에 담긴 메시지를 짧은 호흡으로 풀어내 에세이의 성격이 더 커졌다. “몸과 마음, 생명이라는 하나의 불꽃이 만들어낸 두 개의 그림자”나 “감정은 ‘하등’하지 않다” 같은 글은 제목만 보더라도 저자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에 기반을 두고, 그것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지식과 삶, 나와 너를 연결하는 글쓰기를 시도한다.
또한 저자는 과학적 사실을 건조하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연구를 하거나 논문을 읽으면서 느꼈던 경의와 흥분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세포가 분열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느꼈던 짜릿함, 플라시보 현상과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 품었던 의아함은 과학자가 과학을 대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잘 묘사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과학자가 왜 과학에 빠져드는지, 과학자들이 연구 성과를 얼마나 낭만적으로 대하는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뇌과학이, 과학이라는 활동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 지식은 객관적인 사실이라 우리에게 명확한 방향을 가리켜줄 것 같지만, 그건 우리의 바람일 뿐이다. 과학도 변화하고 논쟁하면서 발전하며, 사회적 분위기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 송민령은 그러한 과정 전체를 과학으로 보고 이해해줄 것을 당부한다. 중요한 것은 과학에서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임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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