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조원재, 미술계의 여성혁명가, 프리다 칼로, 디에고리베라, 원조 막장드라마의 주인공, 두명의 프리다, 소아마비, 맞불, 불륜, 외도, 유산, 떠있는 침대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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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는 여섯 살 소아마비로
아픈 오른발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당당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녀에게 한 번의 큰 사고가 있었으니,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겪은 경전철 사고였습니다.

이 사고로 그녀는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고,
심지어 골반뼈가 손상되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고 맙니다.

절망의 순간, 프리다를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은
바로 '그림'이었습니다.

"나는 원래 의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 안에 흘러넘치는
에너 지를 느끼고는 무언가 다른 걸 한다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느꼈다.
그러 고 나서 나는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그림을 시작했다."
- 프리다 칼로 -

한번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고통의 연속인 현실이었지만,
변함없이 강인한 자신을 ‘새기듯’ 그려내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신통한 치유법임을 스스로 깨달은 것입니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프리다는 1928년 디에고가 속해 있던
멕시코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하며
디에고와 사랑을 싹 틔어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 후, 사랑하는 남편 디에고의
바쁜 일정과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으로
임신에 성공했지만, 결국 유산을 한 프리다는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결혼 후 3년 동안 그림을 놓고 살았던
그녀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프리다 스타일이 탄생하는
바로 그 시작이 이 그림, 떠 있는 침대입니다.
뼈아픈 유산의 아픔까지 겪은 프리다.
그녀에게 한 가지 고통이 더 남아있었으니,
바로 남편 디에고의 외도였습니다.

부인의 친구와의 불륜도 모자라서
프리다의 여동생과도 불륜을 저지르는
막장드라마를 보여준 남편 디에고.
그런 순간에도 디에고는 이런 말을 했다죠.

“나는 이상하게도 한 여인을 사랑하면 할수록, 더 많은 상처를 주고 싶
었다. 프리다는 이런 나의 역겨운 성격으로 인한 희생양 중에 가장 대표적
인 여인일 뿐이었다.”
- 디에고 리베라-

이런 디에고의 막장급 태도는
프리다의 가슴을 더욱 깊게 찢어놓습니다.
고통이 극에 달한 프리다는 불륜에는 불륜!
이라는 맞불작전으로 맞서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다시 붓을 듭니다.

그렇게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던 프리다의 삶을
180도 바꿔놓는 계기가 생겼는데
바로 1938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그녀의 첫 전시회였습니다.
그녀의 그림들이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고
드디어 전업 예술가, 프리다 칼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불후의 명작으로 불리는
위 그림 두 명의 프리다를 그립니다.

심장이 혈관으로 연결되어 있는
두 명의 프리다가 앉아 있습니다.
멕시코 전통의상을 입은 우측 프리다의 손에는
디에고의 사진이 담긴 메달이 쥐어져 있습니다.
이 사진 역시 혈관을 통해 심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럽풍 드레스를 입은 좌측 프리다는
가위로 심장으로 이어진 혈관의 끝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림에서 프리다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멕시코에 있던 과거의 프리다는 디에고를 심장처럼 쥐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적 예술가이자 독립적 여성으로 거듭난 유럽의 프리다는
디에고를 잘라버리겠다. 혈관을 자르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삶의 고통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림으로 그 고통의 순간을 치유했던 프리다 칼로,
강인했던 그녀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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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의 차가운 공업 단지와
메마른 땅이 푸른 하늘을 가로막고 있는 황량한 풍경,
침대 위에 피를 흥건히 흘리며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프리다,
그리고 탯줄에 얽힌 유산의 아픔과 원인이
어찌할 도리 없이 묶여 있습니다.
프리다의 처참한 심경이 돌직구처럼
와닿는 작품입니다.

프리다는 고통을 치유하고자
그림에 자신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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