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라]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는 곧 사라질 것이다.'(Guy Hermet)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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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비밀을 들려주는 라디오] - 딥스테이트 연구소 공유영상

1660년 찰스 1세의 아들, 2세가 왕정복고를 통해 영국으로 들어왔다. 자기의 아버지를 죽인 크롬웰은 패자가 되었다. 1661년 그는 1658년에 이미 죽은 크롬웰의 시체를 8조각으로 부관참시하고 그의 해골을 들어내 꼬챙이에 꽂았다. 그리고는 아버지 찰스 1세의 사형을 언도했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 걸어두었다. 크롬웰의 해골은 의원과 대중에게 선보이며 그렇게 24년 동안 의사당에 걸려 있었다.

1685년 폭풍우에 떨어져 로비 구석을 굴러다녔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1688년 명예혁명 이후에도 그의 해골은 무시 당했다. 크롬웰을 이용해 왕실과 의회를 장악한 런던시티의 유대금융에게 그는 영국침공에 써먹고 버린 사냥개에 불과했다. 그의 해골은 진위여부의 문제를 끌고 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집으로 골동품처럼 팔렸다. 1710년 유료 전시장에 나와 관람되기 시작하여 1799년까지 영국 전역을 굴러다니면서 전시되었다. 1814년 그의 해골바가지를 윌킨슨 가문이 사서 보관하다가 1960년에야 안장시켰다. 이것이 크롬웰을 바라보았던 영국 의회의 현실이었다.

1899년 영국 국민의 찬반 의견을 반반씩 가르면서 크롬웰의 동상이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앞에 세워졌다. 권력을 잃은 크롬웰 개인은 버려도 상관없지만, 승자인 의회 공화정의 상징으로서 크롬웰은 다시 부각되어야 했다. 이것이 크롬웰을 300년 동안 대접했던 유대금융 기반 영국 의회의 엉망진창 정신상태였다. 18세기 영국 의회는 많은 예외적인 애국적 의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반영국적인 법안을 계속 통과시켰다. 의회의 수뇌부는 크롬웰에도 민주주의에도 관심이 없었다. 결국 과두정에 불과한 의회-내각의 권력에만 관심이 있었다. 크롬웰의 쿠데타 의회도 그랬고 그의 사후에도 그랬다.

서구 문명사가 변하고 있다. 서구 정치는 곧(아탈리. 2050년대) 형식마저도 무너질 것이다. 즉 사법부와 의회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것도 결국 크롬웰처럼 토사구팽 당하는 것이다. 사대주의 한국 정부와 의회는 ‘부지불식간에“ 이 거대한 흐름에 서서히 동참하는 듯하다. 이 영상을 3번 보고 조금만 고민하면, 근대서구 정치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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