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올리버색스, 제임스파킨스, 진전마비에 대한소고,복잡한증후군, 뇌염후증후군, 엘도파, 아만타딘, 유니콘, 광적인 정신병자

2 years ago

치과에서 마취주사를 맞고 치료받은 날, 뺨이나 혀가 기묘하게 부풀어 있거나 엉뚱한 곳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낀 적이 있는지? 뺨과 혀가 ‘내 것’이 아닌 듯한 자기 소외감을 느낀 적이 있는지? 뇌로 들어가는 감각 정보가 차단될 때 신체상에 환각이 나타나는 흔하고 가벼운 예다. 환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올리버 색스가 그동안 여러 책에서 보여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이와 같은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특히 이 책 《환각》에서 그의 진솔한 공감이 빛을 발한다.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경험과 그가 상담한 환자들의 사연, 그리고 전 세계에서 독자들이 편지로 전해 온 고백을 통해 환각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탐험한다.

환각은 현대 문화에서 정신과 병동에나 존재하는 광기의 전조로 터부시된다. 스스로 미쳐가고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미쳤다는 낙인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특히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환각의 힘은 1인칭 시점으로만 온전히 재현될 수 있기 때문에, 환각을 이해하는 데 당사자들의 증언은 더욱 소중하다고 한다. 《환각》은 다양한 환각 경험을 조사하는 일에 일생을 바쳐온 올리버 색스의 특별한 역작이다.
목차
머리말

1장 침묵의 군중: 샤를보네증후군
2장 죄수의 시네마: 감각 박탈
3장 몇 나노그램의 와인: 후각 환각
4장 헛것이 들리는 사람들
5장 파킨슨증이 불러일으키는 지각오인
6장 변성 상태
7장 무늬: 시각적 편두통
8장 '신성한'질환
9장 반쪽 시야를 차지한 환각
10장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
11장 수면의 문턱에서
12장 기면증과 몽마
13장 귀신에 붙들린 마음
14장 도플갱어: 나를 보는 환각
15장 환상, 환영, 감각 유령
1장 침묵의 군중: 샤를보네증후군
로잘리는 몇 년 동안 앞을 전혀 보지 못했지만, 갑자기 눈앞에 무엇인가가 ‘보이고’ 있었다.
“어떤 것들이 보입니까”
“동양 옷을 입은 사람들이요!” 할머니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축 늘어진 옷을 입고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어 다녀요. … 한 남자가 내 쪽으로 돌아서서 미소를 지어요. 하지만 입속의 한쪽에 있는 치아들이 굉장히 커요. 동물들도 있어요. 그리고 하얀 건물이 함께 보여요. 눈이 내리고 있어요. 부드러운 눈이 소용돌이치면서 내려요. 말이 있는데(예쁜 말이 아니라 일하는 말), 마구가 채워져서 눈을 치우고 있어요. … 하지만 장면이 계속 바뀌어요. … 아이들이 여러 명 보여요. 아이들이 걸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요. 밝은 색 옷을 입고 있어요. 옅은 붉은색과 파란색이고, 동양 옷 같아요.” 로잘리는 며칠 전부터 계속 그런 장면들을 보고 있었다.
… 나는 로잘리에게 뇌와 정신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안심시켰고, 실제로 누가 봐도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해 보였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환각은 눈이 먼 사람이나 시각이 손상된 사람들에게 종종 발생하며, 환영은 ‘정신병’이 아니라 실명에 대한 뇌의 반응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로잘리의 병은 샤를보네증후군이었다.
… 자신의 환각이 이미 확인된 병이고 게다가 이름까지 붙어 있다는 말에 매우 기뻐하고 안심하는 눈치였다. 로잘리는 기운을 차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간호사들한테 말 좀 해줘요. 내 병이 샤를보네증후군이라고요.” 그러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샤를 보네가 누구예요?” _17∼19쪽

새로운 환각 중 어떤 것은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젤다는 말했다. “그것은 공연이었어요! 막이 오르고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춤을 췄죠. 그런데 사람은 전혀 없었어요. 까만 히브리어 글자들이 새하얀 발레복을 입고 춤을 췄어요.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서요. 하지만 음악이 어디에서 흘러나왔는지는 모르겠어요. 철자들은 상반부를 팔처럼 움직이면서 하반부로 아주 우아하게 춤을 췄어요. 무대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면서요.” _35쪽

2장 죄수의 시네마: 감각 박탈
뇌가 제 기능을 유지하려면 지각 정보가 입력되어야 하며 지각 정보의 변화도 필요하다. 적당한 변화가 없으면 각성과 주의력이 쇠퇴할 뿐 아니라 지각 착란이 발생할 수 있다. 어둠과 고독이 지배하는 환경을 생각해보자. 그런 환경은 성직자들이 동굴에서 수행하며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도 있고 지하 동굴에 갇힌 죄수들에게 강제로 주어질 수도 있지만, 어느 경우든 정상적인 시각 입력을 박탈당하면 내면의 눈이 그 빈자리를 메우고 꿈, 생생한 상상, 환각을 만들어낸다. 고독이나 암흑에 갇힌 사람들을 위로하기도 하고 고문하기도 하는 화려한 색과 다양한 성격의 환각에는 심지어 특별한 이름까지 붙어 있다. ‘죄수의 시네마’가 그것이다. _53쪽

수면 박탈이 며칠을 넘기면 환각을 유발하고, 다른 조건이 모두 동일한 수면에서 꿈 박탈이 며칠을 넘겨도 환각을 유발할 수 있다. 수면 박탈이 극도의 피로나 극단적인 신체적 스트레스와 결합하면 훨씬 더 강력한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
“… 하와이의 철인3종경기는 극한의 온도와 극심한 조건 아래서 여러 시간 동안 단조로움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선수는 환각을 일으키기 딱 좋다. 영계와의 교류를 구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통과의례와 아주 흡사하다. 나는 용암이 펼쳐진 들판에서 하와이 화산과 불의 여신인 펠레를 한 번 이상 보았다.” _61쪽

3장 몇 나노그램의 와인: 후각 환각
장면, 냄새, 소리가 정상적으로 입력되지 않을 때 감각계의 민감성이 높아진다고 해서 이를 축복으로 여길 수만은 없다. 장면, 냄새, 소리의 환각으로, 즉 고리타분하지만 여전히 쓸모 있는 용어로 바꿔 말하자면, 환시phantopsia, 환후phantosmia, 환청phantacusis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각을 상실한 사람들 중 10∼20퍼센트가 샤를보네증후군을 겪는 것처럼, 후각을 상실한 사람들 중에서도 그와 비슷한 비율이 후각 환각을 경험한다. 어떤 경우에는 부비동염이나 두부 손상에 뒤이어 환취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편두통, 간질, 파킨슨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나 그 밖의 질환과도 연관이 있다. _70쪽

그 환각은 대개 냄새를 나타내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어느 날, 저녁이 다 가도록 딜 피클 냄새가 났을 때는 예외였지만요). 하지만 여러 냄새가 뒤섞인 무엇이라고는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쇳내가 나는 볼펜식 탈취제, 달콤함과 씁쓸함이 가득 뒤섞인 케이크, 사흘 전부터 쓰레기 더미에 묻혀 있던 녹아내린 플라스틱). 나는 이런 식으로 냄새 환각에 이름을 붙이고 설명하는 것을 재미있는 놀이로 삼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2주 간격으로 하루에 몇 번씩 환각이 찾아오는 단계를 거쳤습니다. 몇 달 후 환각으로 경험하는 냄새의 가계도가 상당히 불어났고, 지금은 하루에 몇 번씩 환각에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때때로 새로운 냄새가 불쑥 나타났다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환각의 경험은 그때그때 다릅니다. 어느 때에는 바로 코 밑에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강렬하지만 금방 사라지고, 또 어느 때에는 미세하고 오래가는데 때로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_73쪽

4장 헛것이 들리는 사람들
18세기까지 사람들은 환영처럼 목소리도 신이나 악마, 천사나 악령 같은 초자연적인 행위체에게서 나온다고 믿었다. 분명 목소리는 정신이상이나 히스테리의 목소리와 겹치기도 했겠지만, 대개는 목소리를 병리학적으로 보지 않았다. 목소리가 두드러지지 않고 사적인 차원에 머문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인간 본성의 일부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18세기 중반 무렵에 새로운 세속 철학이 출현하면서 계몽운동을 주도하는 철학자들과 과학자들 사이에 세력을 넓혔고, 시각 환각과 환청은 생리학적 기초를 얻으면서 뇌의 몇몇 중추들이 과도하게 활성화한 결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영감’이라는 낭만적인 개념도 통했다. 예술가, 특히 작가는 스스로, 혹은 남들이 보기에는 초월적인 음성의 기록자 내지 필기자였고, 때로는 (릴케처럼) 목소리가 말하는 것을 듣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리기도 했다. _86∼87쪽

어쩌면 보통 사람에게는 생리적 울타리나 억제 과정이 있어, 내면의 목소리를 외부의 소리로 ‘듣지’ 못하게 막아주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울타리가 어떤 이유에서든 망가지거나 발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거꾸로 뒤집어, 왜 대부분의 사람은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지를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줄리언 제인스는 …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모든 인간이 목소리를 들었다고 추측했다. 그 목소리는 내면에서, 즉 뇌의 우반구에서 생성되어 (좌반구에 의해) 지각되었고 사람들은 이를 신과의 직접적인 대화로 간주했다. 기원전 1000년경 어느 시점에 근대적 의식이 출현하자 목소리는 내면화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소리로 인식하게 되었다. _91쪽

5장 파킨슨증이 불러일으키는 지각오인
나는 심각한 파킨슨증을 앓고 있는 80명의 뇌염후증후군 환자들을 여러 해 동안 진료했고, 그들의 증세를 《깨어남》에서 묘사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파킨슨증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이 (엘도파의 효과로 움직이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후) 건강을 회복하게 되자, 나는 그들 중 약 3분의 1로 추정되는 환자가 엘도파가 나오기 전에도 이미 여러 해 동안 시각 환각을 경험했음을 알게 되었다. 환각들은 대체로 친근하고 사교적이었다. 나는 왜 그들이 환각을 경험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어쩌면 고립과 사회적 박탈, 그들이 품고 있는 세상에 대한 갈망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그들의 환각은 가상의 현실(즉, 빼앗겨버린 진짜 세계의 자리를 메우는 환각적 대체물)을 제공하려는 시도인지도 모른다. _120쪽

거티 C.는 엘도파를 복용하기 전에 수십 년 동안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환각증을 겪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초원에 누워 있거나 유년의 고향 근처에 있는 샛강에 둥둥 떠 있는 목가적인 환각이었다. 그런데 엘도파를 복용하자 변화가 찾아왔다. 그녀의 환각은 사회적이고 때로는 성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문제를 나에게 말하면서, 근심스럽게 덧붙였다. “나처럼 아무 희망이 없는 노인에게서 그렇게 친근한 환각을 빼앗아 가면 안 되죠!” _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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