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도올 김용옥,경허스님,동욱,만공,천안풍세면,기골장대,수좌강백,계허스님, 환속,호열자,콜레라,죽음의귀신,괴질, 윤질, 려질,괴려,동경대전,소독,힌두스탄,스승

2 years ago

해월海月(1827년생)과 경허鏡虛(1849년생)! 나이는 해월이 한 세대 위이지만 이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같은 민중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허는 철저히 개인적이며 내면적 수양을 통해 새로운 정신사적 혁명을 수립하려고 했고, 해월은 철저히 공동체적이며 사회조직적 운동을 통해 정치사적 혁명을 수립하려고 했습니다. 두 사람 다 조선역사의 개벽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57~58쪽

서산대사가 팔도도총섭이 되어 의승義僧의 총궐기를 호소하니 순식간에 전국에서 5,000여 명의 승군이 조직되었다고 합니다. 서산대사의 역량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서산대사는 의승군을 거느리고 명군明軍과 합세하여 평양성을 탈환하고 서울을 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36~37쪽

서산은 수행자로서도 탁월한 인물이지만 매우 심오한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선禪? 교敎 양면을 깊게 통달한 사람입니다. …… 하여튼 조선 중기에 서산과 같은 큰 인물이 스님들의 구심점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44쪽

바로 경허처럼 단단한 학식, 그것도 한학의 기초를 다진 스님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죠. 경허는 세칭 이단비도異端非道의 스님, 막행막식의 선승처럼 이해되고 있지만 경허처럼 무서운 학승이 없고, 그의 싯구에 담긴 한학의 소양은 그저 흉내만 내는 스님들의 화려함이 미칠 수 없지요. 49쪽

그러나 경허는 말합니다: “내려놓으라!” 짐을 내려놓는데 전혀 예수의 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려놓으면 됩니다. 부인과 남편과 사소한 일로 싸우고 그것이 짐이 됩니다. 그냥 내려놓으면 될 일을 계속 가지고 다니면서 이를 갈지요. …… 이 한마디만 제대로 이해해도 한평생 정신과 의사를 찾아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77~78쪽

“부처님은 이 천장사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 못 먹고 못 있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부처님께 시주하는 것과 똑같은 것, 머슴이나 하인이나 백성들을 잘 보살펴주시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불공입니다.” 83쪽

우리나라의 불교전통이야말로 당?송의 불학을 뛰어넘는 우리민족의 고유한, 독자적인 삶과 가치와 느낌의 결정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었죠.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만이 우리민족의 새로운 정신사적 활로라는 것을 이 조선땅의 미래세대들에게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 방편으로 내가 택한 불교의 진리체계가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는 것입니다. 112~113쪽

그러니까 아주 쉽게 말하자면, 선이니 삼매니 요가니 하는 말들이 뭐 대단히 어려운 철학적 용어가 아니라 “정신집중” 정도의 아주 비근한 인도말의 다양한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죠. ……
선(댜나), 삼매, 요가 등등은 본시 인도사람들의 생활습관 속에 배어있는 수행방식일 뿐, 그것이 그러한 생활습관과 분리되어 있는 어떤 지고한 철학적 경지나 신비한 체험, 혹은 인간의 정신이 도달해야만 하는 어떤 실체적 코스모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116~117쪽

밥 먹고 똥 싸는 것, 졸리면 자곤 하는 것이 선禪이다? 이 깊은 뜻을 조금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결코 쉽게 넘어가는 일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임제는 여기서 “일상의 삶” 그 모든 것이 선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는 모든 종교적 환상의 실체성을 거부하고 있을 뿐입니다. 120쪽

움직이는 모든 현상은 항상됨이 없다. 인과에 의해 끊임없이 변한다
모든 것이 고苦다! 아~ 고통스럽다!
모든 다르마는 아我가 없다. 주체가 없다! 자기동일성의 지속이 없다!
번뇌의 불길을 끄자! 그러면 고요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게 불교의 알파-오메가입니다. 불교의 전부입니다. 아니! 불교가 이렇게 쉽단 말이오? 133~134쪽

반야경이 성립하면서 대승불교라는 것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도 있겠고, “대승불교”라는 어떤 새로운 불교운동이 일어나면서 반야경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대승불교”라는 게 도대체 뭔지, 그리고 또 소승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반야경전들과 『반야심경』과의 관계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이 충분히 얘기되어야만, 여러분들이 반야심경을 알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151쪽

기나긴 불교사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승불교의 종착지는 선종이었다.” 선불교라는 것은 대승불교의 모든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구현한 실천불교의 정점입니다. 불교는 선종을 통해서만 법난을 이겨낼 수 있었고, 우리나라 조선왕조시대에만 해도 선종의 독자적이고 실천적인 성격 때문에 그 통불교적인 포용성을 상실하지 않고 순결한 모습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158쪽

우선 대승불교은 싯달타의 가르침을 따르는 초기불교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대승불교는 싯달타의 종교가 아니라 보살의 종교입니다. 대승불교는 이미 싯달타의 가르침을 준수하겠다는 사람들의 종교가 아닌, 보살들, 즉 스스로 싯달타가 되겠다고 갈망하는 보살들의 종교입니다.. 176쪽

접기
출판사 서평
도올, 반야심경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전해준다!

20대의 도올은 반야심경의 의미를 접하고 충격을 받는다. 이 책은 그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반야심경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룬다. 반야심경은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이다. 이 경전이 탄생되기까지의 결정적 장면들을 생동감 있게 이야기한다. 싯달타에서 대승불교까지의 인도 불교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또 공空사상이 전면에 등장하는 반야심경 텍스트를 심도 있게 분석하여, 반야지혜의 구체적 내용을 현재 우리의 문제의식과 결부시켜 쉽게 설명해준다. 또한 이 책은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해준다. 선禪중심의 한국불교는 독특하다. 서산대사로부터 경허, 만공을 거쳐 성철, 법정으로 이어지는 우리 선 수행 전통의 도도한 흐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우리 불교의 내밀한 인간적 모습과 큰 울림을 주는 선사들의 공안을 소개하면서 한국불교가 조선시대에 핍박을 받음으로 인해 오히려 순결한 수행풍토가 이어져왔다는 아이러니를 알려준다. 저자가 들려주는 위대한 수행자 경허의 이야기는 무엇이든 감동적이다.

도올의 50년간 묻어둔 이야기!
50년 전 도올 김용옥은 방학을 이용하여 천안부근의 광덕사에 단기 출가 중이었다. 그 때 그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하게 된다. 산사의 뒷깐에서 [반야심경]이란 문헌을 우연히 접하게 되고 그 뜻을 헤아리는 어느 순간,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이 확연히 달라지고 엄청난 흥분에 휩싸이게 된다. 그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 때 그는 순우리말의 오도송을 발한다. 반야심경이 무엇이길래, 20대 초반의 철학도를 그토록 사로잡은 것일까? 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Loading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