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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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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바누스는 …… 형제, 즉 동방의 기독교인을 “무슬림의 압제와 억압”으로부터 “해방하라”고 촉구했다. …… 십자군 원정은 동방의 형제들을 위해 고상하게 목숨을 내놓는 사랑의 행동이 될 것이다. 그들은 집을 떠났기 때문에 수도원에 들어가려고 세상을 버린 수사들과 똑같이 천상의 보답을 얻게 될 것이다. 우르바누스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신앙적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십자군 원정은 교회의 리베르타스[특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우르바누스의 정치적 공작에도 필수적이었다. _ 8장, 319쪽

3세기 가까이 소아시아와 예루살렘을 피로 물들인 십자군의 이 광기는 이슬람교 전통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암스트롱은 십자군 원정 동안 오래전 무슬림에게 잊힌 폭력적 투쟁으로서의 ‘지하드’가 깨어났다고 설명한다. 본래 지하드는 주로 무슬림에게 내적 이기심에 맞선 ‘싸움’을 의미했고, 무함마드는 무슬림이 전쟁 후에 정신적 개혁인 ‘더 큰 지하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 이슬람 성직자의 마음속에서는 ‘더 큰 지하드’에 군사적 지하드가 새겨졌으며, 무슬림이 서방의 공격을 받을 때면 이 영성이 다시금 활활 타오르게 된다.

거의 죽었던 지하드는 이 지역에서 살아 있는 힘이 되어 갔다. 지하드는 이슬람에 내재하는 폭력적 본성이 아니라 서방의 지속적인 공격 때문에 부활했다. 훗날 서방의 중동 개입은 모두, 아무리 그 동기가 세속적이라 해도, 제1차 십자군 원정의 광적인 폭력의 기억을 불러내게 된다. _ 8장, 332∼333쪽

로크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사물의 본성 자체에 새겨져 있다고 가정했다. 물론 이 생각은 급진적 혁신으로서 같은 시대 사람들은 대부분 로크의 생각이 특이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근대의 종교는 전에 있던 어떤 것과도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그러나 로크는 종교가 격한 감정을 분출할 수도 있다고 보고, 종교를 정부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평화로운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로크에게서 우리는 서양의 에토스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는 ‘종교적 폭력 신화’의 탄생을 본다. _ 9장, 396쪽

새로운 신앙이 된 ‘민족주의’
19세기 유럽에서는 산업화와 함께 ‘민족’ 개념이 등장했다. ‘민족’은 국가가 떼어내버린 종교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는데, 종교가 일으키는 감정과 분위기까지 대신하며 사실상 유사 종교로서 역할을 했다. 독일 철학자 피히테는 통일된 독일 민족 국가를 염원하면서 민족의 신성성과 영원성을 강조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의 국가들은 모든 시민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민족주의 신화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종교와 달리 민족주의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계발되지 않았기에 폐쇄적 경향을 보였으며, 특히 소수 민족에 대한 폭력을 막는 윤리적 태도를 담지 못했다.

신성한 것을 사람이 그것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민족은 틀림없이 성스러움의 구현체, 지고의 가치였다. 따라서 민족 신화는 민족이라는 테두리 안의 단결 연대 충성을 장려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아직 종교와 연결된 다수의 영적 전통에서 중요한 이상이었던 ‘만인에 대한 관심’이 계발되지 않았다. 사실 이런 보편적 감정 이입이 전사 귀족의 폭력에 영향을 끼친 적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대안을 제시하고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제 종교가 개인화하면서 힘없는 민족은 증대하는 구조적, 군사적 폭력에 점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폭력에 맞설 ‘국제적’ 에토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_ 10장, 444쪽

미국에서 일어난 대각성운동과 평등의 이상
암스트롱은 18세기 전반 미국 식민지에서 일어난 신앙부흥운동인 ‘대각성운동’이 종교가 근대화의 방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미국 식민지를 이끈 지도자들은 교육을 받은 신사 계급으로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정신에 매료되었지만, 그런 사상은 문맹이었던 대다수 청교도 민중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대각성운동’은 미국 사회 주변부로부터 터져 나와 민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평등주의의 이상을 설명하며, 교육받지 못한 계층에까지 종교적 계몽을 선사했다. 즉 미국인을 계몽하게 한 것은 인권 철학이나 인본주의 사상이 아닌 바로 ‘종교’였던 것이다. 또한 대각성운동에 참여한 목사들은 개개인의 신앙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과정에서 기성 귀족 체제에 속박당하지 않는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가 태동할 수 있었다.

‘건국의 선조’는 신사 계급에 속했으며 그들의 사상은 전형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대부분 칼뱅주의자였던 미국인은 건국자들의 이 합리주의적 에토스에서는 자신과 연결되는 관련성을 찾지 못했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처음에는 영국과 결별하는 것을 망설였기 때문에 모두 투쟁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며, 참여한 사람들은 건국자들의 이상만큼이나 기독교의 천년 왕국 신화에서도 동기를 찾았다. 독립전쟁 기간에 세속주의 이데올로기는 다수의 종교적 갈망과 창조적으로 섞이면서 아주 다양한 신앙을 가진 미국인들이 잉글랜드의 힘에 맞서 한데 뭉칠 수 있었다. _ 10장, 411쪽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세기에 유행처럼 번진 ‘종교적 근본주의’는 근대화와 함께 개인의 영역으로 추방당한 종교를 복원하려는 저항 운동이었다. 암스트롱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기독교 근본주의보다 더 공격적으로 표출되는 이유는, 이슬람 자체의 호전적 성향 때문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무슬림이 겪은 폭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근대화는 서양에서는 토착적으로 자라나 서서히 무르익었지만 무슬림 세계에서는 식민주의라는 혼란과 분열 속에서 군사적인 강요로 가혹하게 이식되었다. 암스트롱에 따르면 ‘근본주의’는 자신의 신앙을 파괴한다는 공포에 빠질 때 발흥하며, 외부의 공격은 그 폐쇄성을 강화한다.

유럽인이 그려놓은 국경이 워낙 자의적이었기 때문에 [무슬림은] 민족적인 ‘상상의 공동체’를 창조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 레바논은 인구의 50퍼센트가 무슬림이라 당연히 아랍 이웃들과 긴밀한 경제적, 정치적 관계를 원했지만, 프랑스가 선택한 기독교 정부는 유럽과 더 강한 유대를 선호했다. 1948년 국제연합(UN)의 팔레스타인 분할과 이스라엘 유대 국가 건설도 이에 못지않게 유해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일은 아랍계 팔레스타인 주민 75만 명의 강제 이주를 낳았으며, 남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국가 안에서 살게 되었다. _ 11장, 464쪽

우리 시대에 필요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종교의 본질적 폭력성’에 대한 역사적 규명을 시도하는 이 책은, 역사상 ‘종교적’ 전쟁, ‘종교적’ 폭력으로 불린 참상들이 실제로는 정치 투쟁의 결과에 가깝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진실은 이 책에서 종교가 폭력의 문제에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주장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암스트롱은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면,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인류가 겪고 있는 분열, 불화, 분쟁에 종교가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공동체를 향한 공감, 연민, 배려를 증진할 수 있는 종교 본연의 영성 계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암스트롱이 안내하는 종교와 폭력에 관한 이 광활하고도 지적인 역사 여행을 통해, 독자들은 종교가 개인적이고 의례적인 신앙을 넘어서서 공동체를 위한 적극적인 헌신에 힘쓸 때, 비로소 오래전 ‘피로 물든 땅’에서 탄생한 위대한 종교 전통(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유교)이 지금껏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힘, 곧 종교의 존재 이유에 다가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설령 내 탓이 아니더라도 내 이웃이 겪는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동정과 사랑의 감각을 키우는 것. 이것이 기원전 6~2세기에 형성된 힌두교의 위대한 경전 우파니샤드의 정신이자, 붓다가 설파한 자비의 본의이며, 중국 춘추시대 천하를 돌아다니며 덕치(德治)를 주장한 공자의 핵심 사상이자, 로마 속주 팔레스티나에서 예수가 설교한 하느님의 왕국의 본 모습이며, 이슬람 공동체가 상업화된 메카의 불의 속에서 지키고자 했던 정의와 다르지 않음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우리는 오늘날 과거 예언자들이 그랬듯이 사람들이 현재의 ‘경제적, 역사적 상황’의 다루기 힘든 딜레마와 마주하도록 도와줄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이제는 농경 제국의 억압적 불의와 싸우지 않지만 여전히 큰 불평등과 권력의 불공정한 불균형이 있다. 그러나 이제 소외된 사람들은 무력한 농민이 아니다. 오늘날 소외된 사람들은 맞서 싸울 방법을 찾았다. 생명이 유지될 수 있는 세계를 원한다면 우리는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고 우리의 자기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서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종교의 역사에서 십자군과 지하드만큼이나 중요한 ‘내어줌’, 이타심, 동정심을 요구한다. _ 후기, 606~6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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