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계 80518 영상 -세번째 사기 518 발단 사건

13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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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군사반란은 청죽회가 김대중과 김대중 여단 4500명 그리고 북한군 이을설 중장이 동원한 600명의 북한군 특수부대가 일으킨 무장 군사반란임을 청척모는 밝히고 있습니다.

518을 민주화로 포장한 김영삼 정권의 개, 홍준표는 518 군사반란의 중요한 군사작전을 다 삭제하고 민주화로 포장하기 좋은 1980년5월 18일 오전 9시 30분 전남 대학교 정문에서 벌어진 북한군 2전대 300명이 김대중 여단 병력 중 대학생 일부가 참전한 작전을 518 민주화 투쟁의 발단 사건이 이라고 규정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동일 새벽 4시 북한군 2명이 카빈 소총을 들고 아시아 자동차에 침입해 군용 5톤 구난차와 2.5톤 군용카고 트럭을 강탈해간 사건이 있었고, 새벽 5시 이후에 아시아 자동차 경영진들이 전남계엄사령부인 전투교육사령부에 이 사건을 신고한 사건을 전교사와 505보안부대가 묵살한 사건이 있었음을 작계 80518 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투교육사령부와 505보안부대가 아시아 자동차 경영진들의 신고를 제대로 처리만 했다면, 518 반란세력들이 민주화 투쟁의 첫번째 발단 사건이라고 주장을 하는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벌어진 7공수 경비병들과 북한군 2전대 300명의 투석전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음도 밝힌 바가 있었습니다.

특히, 7공수 지휘관들 중에는 이미 북한군들이 투입이 되어 있었다는 청척모의 폭로와 경비병들에게 접근을 했던 무리들 중에 김대중 여단의 학생 지휘부 요원인 김종배가 있었고, 김종배는 이을설 북한군 중장이 전남도청을 접수하였을 때 학생수습위원회 조직을 명령했을 때 이 명령을 수행하면서 아무도 전남도청에 출입을 하지 못했을 때 전남도청을 출입했던 인물이며, 518이 끝나고 김대중이 정치에 복귀했을 때 국회의원을 만들어 줬던 인물이기도 하며, 북한군 잔존 병력들이 철수를 한 이후인 1980년 5월 25일부터 도청 수복인 27일까지 도청방어 고교생들을 매수하고 투입하는 공작을 주도했고, 전교사 상황실과 비밀 접선을 하면서 도청방어 작전에서 살아 나 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김종배는 18일 전남대 정문에서 7공수 경비병들에게 접근을 했던 20여명의 집단에서 북한군과 직접 작전을 했던 유일한 인물이며, 이을설 북한군 중장이 전남도청 접수 직후에 학생수습위원회 조직을 명령했을 때 이를 이행하고 다음 날 전교사에 체포되어 구금되어 있던 북한군 34명을 석방해 끌고 나온 후, 이들에게 한국군 군복과 배낭을 지급해 사진에 찍힌 병력을 인솔하고 이을설 중장에게 인수인계 한 반역적인 인물입니다.

이런 증거가 명백한 반역적 사건을 518 반란 세력들은 온갖 거짓말로 포장을 해서 이 사건을 518 민주화 운동의 발단 사건으로 조작해 지금까지 선전 선동을 해오고 있음을 전 국민들은 잘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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